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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살이

오바마가 보여주는 리더쉽

취임 후 처음으로 워싱턴 DC를 떠나 오바마가 방문한 곳은 인디애나 주의 엘크하트 (Elkhart)였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미시간 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5대호 중 하나인 미시간 호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county이다.
오바마가 선거 유세를 위해 6개월 전에 들렀을 때에는 이 곳의 실업률이 9% 정도 였는데 지금은 14%에 육박하고 있다. 이유는... 이 지역을 먹여살리는 RV 산업이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캠핑카로 불리는 RV는 움직이는 집, 움직이는 침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땅덩이가 큰 미국에서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대씩 갖고 싶어하는 자동차이다. 하지만 고유가와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RV 업계, 그리고 그 RV 업계가 몰려있는 엘크하트는 미국 제조업의 현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오바마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이곳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800 billion.. 우리나라 돈으로 자그마치 1000조원이 넘는 경기부양책을 놓고 워싱턴 정가가 갑론을박을 할 때 오바마는 이 지역을 찾아가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내가 출퇴근 때마다 듣는 NPR 뉴스에서는, 이번 방문은 시민들에게 새 법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DC의 상하원 의원들에게 시민들의 반응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렇다. 경기부양책이 교착상태에 처해있고, 이런저런 논란이 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문제를 단순하게 풀어나갔다. "이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과시키면 국민들이 더 큰 지지를 보내줄 것이다!"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에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대통령 선거 때 오바마의 구호가 "Change" 였던 것은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바꿔야 한다"고 떠들어댄다고 표를 얻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정치인들 중 "바꿔야 한다"는 얘기 한번 하지 않은 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시민들이 그때마다 열광하면서 그에게 표를 주었던가?

중요한 것은 선거를 치르면서 오바마가 미국 국민들에게 준 믿음이다. 그의 솔직한 언변이, 각종 이익단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그의 현재 모습이, 그리고 시민을 위해 살아온 그의 삶이 "저 사람이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다"는 믿음을 준 것이다. 이번 엘크하트 방문은 선거 때 보여준 그의 모습과 대통령이 된 지금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대중을 상대로 리더쉽을 보여주는 것 뿐 아니라, 이 힘을 이용해서 오바마는 의원 개개인과도 면담을 시도한다. [관련 기사] 그 높고높은 연방의회 의원이라 할지라도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드라마 "West Wing"을 보면 이런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의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대통령과 '딜'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 의원들을 초청해 놓고 자기 카드를 꺼내들지 않음으로써 상대방 역시 카드를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대신 사소한 이야기(사실은 철저히 준비된 이야기일 것이다)를 나누었고, 그 자리를 떠난 의원들은 다들 입장을 바꾸었다고 한다. '정치'를 아는 의원들은 그 대화 속에서 무언가를 읽었을 것이고 오바마 역시 무언가 제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음험한 거래로 보이지 않는 것, 그건 바로 오바마에게는 대중적 지지가 있고, 그 대중적 지지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의원들을과 '무언의 딜'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이런 걸 떠나서 오바마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도자에게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때로는 문제를 단순화해서 풀어야 할 때가 있다.
취임 초, 몇몇 지명자가 낙마를 할 때에도 그는 솔직히 "I screwed up." 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시인했다. "자신의 잘못을 자인하면 대통령의 면이 안선다..." 이런 식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상황을 심플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버린 것이다.
이번 경기부양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오바마의 논리는 단순하다. "이 법안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지난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흑백논리라는 단순함을 선보였지만, 이번 대통령 오바마는 웬지 깊은 사색을 거친 끝에 한방에 정리하는 단순함을 보여준다는 그런 생각이, 그런 믿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