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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검거는 상징조작을 노린다

검찰이 미네르바를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50대, 증권사 근무 경력, 해외 채류 경험 등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30대의 전문대 졸 무직자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 미네르바가 맞다 아니다는 논란이 일고 있지만 어차피 증명은 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미네르바"라는 다음 아고라의 필명은 디지털로만 존재한다. 내 옆집의 누군가가 미네르바라고 주장해도 그가 미네르바가 아님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음 측을 통해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애초에 차명으로 가입했다면 지금까지 글을 써온 장본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니, 나는 다음 측에서 미네르바의 신분을 정보기관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본다. 정식 체포영장을 들고 왔다면 모를까, 단순한 요청 또는 압력에 회원 정보를 빼내주는 회사는 네티즌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을 것이고 그 회사의 인터넷 사업은 더이상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다음 측에서 검찰의 요청에 의해 미네르바의 인적사항을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128481&code=210111
전기통신사업법이란 게 참 무서운 것이군요. 영장도 없이 검찰에서 요청만 하면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그 30대 인물에 대해서는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가 미네르바일 가능성은 아주 낮다. 지금까지 미네르바가 쓴 글을 읽어보면, 그가 근거로 든 통계자료들을 보면 어떠한 인적 네트워크도 없이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해서 그정도의 정보와 식견을 확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무직자가 바로 미네르바 였다는 그 발표는 무엇인가?
이미 신뢰가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검찰의 얘기이니 그냥 무시하고 말겠다, 이러면 그만인가?


30대, 무직자, 자신의 집에서 1백여 편의 글을 써온 미네르바...
이 이미지는 바로 위의 '페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미네르바가 조금 유명해지면서 그 아래 달린 비난 댓글들이 겨냥한 이미지 역시 "방구석에서 사회를 향해 어두운 소리만 뱉어내는 패배자" 였다. KBS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미네르바를 조명하며 자료화면으로 어두운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패배자를 보여줬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미네르바를 이런 이미지로 색칠해놓고나면, 그러한 미네르바에 열광했던 아고리언들은 모두 이 "찌질이"에 놀아난 "더 찌질이들"로 위치지워진다. 그 "찌질이"의 캄캄한 한국 경제 전망은 패배자의 넋두리에 불과하고 그것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아고라가 "패배자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이다, 라는 상징조작이 가능하다.

어차피 진리나 진실이 밝혀지기 힘든 일은 그 누군가 이해관계를 가진 자에 의해 상징조작이 이뤄짐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봐왔다. 역설적으로, "눈을 뜨고 현실을 극사실주의적으로 보라"는 미네르바의 충고는 이번 해프닝 (그렇다, 나는 이번 일을 '검찰의 검거발표'가 아니라 '해프닝'이라 부르고 싶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상징조작과 더불어 이번 미네르바 검거는 열심히 활동하는 네티즌들을 더더욱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단적인 예로, 아고라 경제방의 '세일러'님은 매일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지만, 어제부터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필립피셔"님은 자신이 그동안 쓴 글을 모두 지웠고 자신의 블로그 역시 닫혀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따라할 바보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이런 견해도 있구나" 하면서 참고를 삼을텐데, 그분들은 지금까지 올린 글 때문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는 것이다. 앞으로 글을 올려도 지독한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붙잡힌 그 30대 남자는 내가 알던 미네르바가 아니다.
전세계 경제 흐름을 쾌도난마로 정리해주던 그 고구마 장수 영감이, 카메라 플래쉬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한다면 나는 그가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확신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붙잡힌 그 30대 남자는 상징조작을 위해 동원되었거나, 스스로 영웅심에 도취되어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