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건이 일어났을 때 썼던 글 3개를 한꺼번에 올려놓습니다. 당시 사건일지도 같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냥 첫번째 글을 썼을 때는 MBC가 취재윤리 때문에 코너에 몰리고 사건이 유야무야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두번째 글은 브릭을 중심으로 논문 조작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급기야 노성일 원장이 "줄기세포는 없다"는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에 썼습니다.
세번째 글은 이미 논문조작임이 명백히 드러난 상태에서 논점을 이탈하는 각종 인터넷의 주장들, 특히 음모이론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서 썼던 글입니다. 제 다른 홈피에 있던 글들인데 이제 그곳을 문닫게 되어서 그냥 이곳에 이렇게 옮겨와 봅니다.
목차
1. 상식있는 과학자의 태도는... (2005년 12월 9일)
2. 대한민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2005년 12월 16일)
3. 아직도 음모론을 믿으신다면 (2005년 12월 23일)
1. 상식있는 과학자의 태도는... (2005년 12월 9일)
처음 PD수첩에서 황우석 박사 연구의 난자취득 문제를 지적했을 때 누리꾼들의 반응은 이해못할 것이 아니었다. 과학하는 사람이 뭔가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 미국에서는 간단한 설문지만 돌리려고 해도 Human subject consent form에 한명한명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많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그래서 동양적 윤리와 서양적 윤리가 다르다고 강변할 때도 나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비록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내려면 그들의 윤리규정과 연구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나름의 기준도 그들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은가 라는 반발심도 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연구진위 문제로 초점이 바뀌면서 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자를 그런 식으로 취득한 건 결정적인 흠은 아니다. PD수첩이 오버했다는 데에 어느정도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뭔가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터넷의 여론은 이 검증 시도조차 "오버질"이라고 매도를 하고 있었다.
360 여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낸 사람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와일즈 박사였다. 그가 증명을 발표하는 그 순간, 많은 수학자들은 경탄과 감격 속에 그의 증명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증명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 와일즈 박사는 몇달간 칩거하면서 그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 모두의 인정을 받는 증명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상식적으로, 연구의 진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면 그 진위를 밝히기 위한 증거물을 내어놓거나 그 연구결과가 올바름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와일즈 박사가 그러했듯이, 반론의 여지를 없에면 되는 것이다.
근데, 황우석 연구팀 측의 대응은 다소 상식 밖이었다. 실험과 데이터로 얘기를 해야할 과학자들이 언론사의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DNA 검증을 위해 넘겨준 샘플에 쥐세포를 사용했음에도 사람 세포를 사용했다고 얘기하여 정상적인 DNA가 검출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황우석 연구팀과 PD수첩, 쌍방이 합의한 변호사가 입회한 DNA 실험에서 양측 모두의 오류가 있었다면 재검증을 해서 진실을 밝히면 된다. 그런데 재검증은 또 못하겠다고 한다. 그냥 우리는 황우석 연구팀을 "믿고" 이대로 "덮고" 그들이 또다시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논문을 실으면 환호나 질러야 한단 말인가?
난 이게 상식이라고 믿었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꼼짝못할 증거를 내어놓음으로써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고 비로소 권위도 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기분 나쁠 것이다. 나 역시 피땀흘려 연구한 내 논문에 대해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고 고마울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오류가 수정되고 나의 학문적 능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누리꾼들이 분노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과학자가 논문으로 황박사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일개 언론"이 감히 검증을 하자고 덤볐다는 데 있다. 너희 MBC는 그만큼 윤리적이고 그만큼 전문적이고 그만큼 국익에 보탬이 되었느냐는 자격 논란이다.
하지만 이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MBC 역시 PD들이 주체가 아니라 자문 과학자들이 있고 DNA 검사 역시 전문업체에서 실시하였다. 무엇보다, 황우석 연구팀의 일원(그 역시 과학자이다)이 의문을 제기하였고, 취재결과 다른 연구원들도 그 제보를 뒷받침하는 증언을 해줬고 세포 사진이라는 물증도 있고 (이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검증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나설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PD수첩이 아니라도, 이정도의 사실을 알고 있는 그 누군가는 반드시 의문을 제기하였을 것이다.
연구의 진위 문제가 불거진 논문의 핵심은 상식있는 일반인이면 이해가 가능하다 (물론 논문자체는 엄청 전문적이지만, 핵심 내용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난자 200개에 하나 정도의 수율로 체세포 복제가 성공하였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는 새로운 방법 (소위 젓가락질이라 불리는)으로 그 수율을 10배나 높여서 체세포 복제 후 줄기세포를 11개나 확립해냈다는 점이다.
근데,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실제로는 3개밖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걸 11개로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혹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나? 그 11개 줄기세포의 DNA와 복제에 사용된 체세포의 DNA가 같은지 다른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괜시리 체세포 복제를 재시연하는 식의 복잡한 과정도 필요가 없다. 다들 스너피의 성공을 믿기 때문에 황박사 연구팀에서 체세포를 복제할 수 있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우석 연구팀은 이미 사이언스에 논문을 낼 때 DNA 일치여부를 검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괜한 흠집내기가 아니라, 신뢰할만한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 현재 형편이다. 논문을 낼 때 DNA 검사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한번 더 못할 이유는 없다. 재검사를 통해 이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면 황우석 연구팀 측에서도 즉각 환영할만한 사안이 아닌가 말이다. 괜시리 기자회견하고 미국 왔다갔다 한다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샘플 채취해서 공개적으로 DNA 검사를 하는 것이 시간을 훨씬 절약하고 진정 과학자다운 해결방법이 아닌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황우석 연구팀측의 대응은 나를 설득시킬만큼 결정적인 걸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역시 가슴 한켠에 의문을 가지고 사태가 이렇게 덮이는 걸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오히려, 이 논란을 폭발시킨 누리꾼들의 댓글은 우리사회에 또다른 고민을 던져준다.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황우석 연구팀을 그만 괴롭혀라, 수십, 수백조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이 연구를 위해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데 왜 발목을 잡아서 연구를 지연시키느냐, 이건 황우석을 매장시키려는 국제사회의 음모이다... 사이언스가 검증했는데 왜 재검증이 필요하냐 (분명히 사이언스는 DNA 검사까지 하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상대로 미분방정식의 증명을 해달라는 식 아니냐 (논문을 이해시켜달라는 게 아니라 DNA 검사만 하자는 것이다)... PD수첩이 결국 비윤적인 취재를 한 게 드러났다 (그렇다고 연구결과가 진실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급기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덧글까지...
이 모든 것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다. 쟁점은 단순하고 해결방법 역시 단순하다. 논문의 진위가 합리적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의심을 해소하려면 복잡한 시연 같은 것도 필요없고 DNA 검사만 하면 된다. 기자회견이나 다수결로 논문의 진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위를 가리는 게 맞다. 진실을 밝히자는 사람들의 입을 폭력적으로 막으면 일시적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있겠으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진다. 그것은 황우석 연구팀의 승리 또는 PD 수첩의 승리가 아니라 바로 진실의 승리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핵심을 벗어난 얘기들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이 논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가?
나는 인터넷의 상호작용과 자정능력을 지금껏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바탕한 주장은 즉각 반박이 되었고,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글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설득력있는 글은 "펌질"을 통해 곳곳에 유통되었고 "논객"이라는 인터넷의 유명인사도 여럿 탄생하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누리꾼들의 모습은 그 상호작용과 자정능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논리 이전에 끈끈한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감정, 또는 호불호로 단순화시켜 얘기할 수 없는 어떤 가치체계 같은 것이다. 그 가치체계을 뒤흔드는 논리를 만났을 때 과거같으면 논리적인 토론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힘의 논리가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것은 누리꾼들이 그동안 선거나 각종 사회적 이슈에서 거둔 성공에 기반한 일종의 학습효과로 보인다.
지금은 무어라 단정지어 말하기 힘든 것 같다. 과거 소수에 독점된 언론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던 때에 비하면 일견 진보한 형태이긴 하지만, 인터넷 여론 역시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폭력성을 띨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5년 전통의 PD수첩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황우석 연구팀은 천명이 넘는 여성들로부터 난자를 기증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상상을 초월하는 누리꾼들의 응원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이번 논란은 황우석 연구팀에게 많은 성과를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과학 외적으로 볼 때 말이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난치병 치료 시기를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는 것이리라. 아울러 많은 특허들을 세계의 다른 경쟁국가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출원해서 우리나라에 막대한 부를 선사하는 것이리라. 나는 진심으로 이들의 성공을 바란다.
하지만 과학의 논리로 볼 때 이번 논란은 해결되지 않은 채 넘어가버렸다. 그런 면에서 황우석 박사의 성과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으나, 이번 사태에 보여준 과학자로서 그의 태도에까지는 박수를 보내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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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한민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2005년 12월 16일)
결국 진실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그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재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앞의 글에서 주장하였지만, 저는 그 재검증의 결과가 황우석 박사의 성과를 입증하는 방향이길 바랬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결국 세계 속에서 한국 과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모두가 바라지 않는, 최악의 경우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해주고 있군요...
애초에 이 문제는 황우석 죽이기/살리기가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한 과학자의 연구에 대해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고, 그것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는 의혹이라면 과학적으로 해소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체세포를 복제한 줄기세포가 있냐 없냐, 있다면 그게 11개가 다 있느냐 하는 게 저를 포함한 검증을 주장한 사람들이 알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11개의 줄기세포 DNA와 체세포를 제공했던 환자의 DNA를 비교해보면 끝나는 문제였습니다. 친자확인에 널리 사용되는 DNA 지문분석으로 길어야 이틀이면 결과가 나오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곁가지로 끼어들어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황우석 죽이기"라는 주장입니다. 새튼 박사를 비롯한 유태인, 성체줄기세포 연구진영, 기독교와 카톨릭 등 종교진영 등을 얽어놓은 "소설"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여기에 비뚤어진 애국심이 더해지면서 거대한 분노의 물결이 인터넷에 흘러넘쳤지요. 이 속에서 양식있는 지식인과 과학자 역시 거대한 사이버 테러의 위협 속에서 이성적인 얘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이 문제는 황우석 죽이기/살리기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나 정치적 접근에만 익숙한 일부에서는 피디수첩 죽이기를 시도하고, 황우석 죽이기로 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이렇게 드러난 현재, 검증을 가장 열심히 주장해온 젊은 과학자들 역시 황망해하고 있습니다. 각종 증거들이 논문의 조작을 뒷받침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줄기세포가 몇개는 있지 않을까 라고 다들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과학자의 특성상,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줄기세포의 진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검증을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저 역시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성공하여 환자들을 치료하고 우리나라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 논문은 허위의 사실로 가득찬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영롱이, 진이, 스너피의 성과까지 의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민들은 그를 용서할지 몰라도, 이미 과학자로서 그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이고, 앞으로 그의 이름을 단 논문을 실어줄 학술지는 찾기 힘들 거라고 보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네티즌의 폭력성에 대해 한마디 했었습니다. 인터넷의 자정 기능에도 의문이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은 틀린 것 같아 역설적으로 아주 기쁩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 성급하게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조작 의혹, DNA 마커 유사성 의혹, 그리고 미즈메디의 또다른 논문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수록된 사진이 똑같아 보인다는 의혹까지... 이 모든 의혹이 제기되고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티즌의 힘이었습니다. 사건 초기에 20:80으로 재검증 필요를 주장하던 목소리가 극히 소수에 불과하였지만 결국 45:55까지 갈 수 있었던 것 역시 인터넷의 자정 기능을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편, 황우석 연구팀의 부정 때문에 한국의 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라느니, 한국의 연구팀들이 더 까다로운 검증에 시달릴 것이라는 걱정은 별로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황우석 교수가 한국에서는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이지만, 그건 그간 언론의 "띄우기"에 기인한 바 크고, 외국에서는 관련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문제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아울러, 과학자들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한 연구팀의 부정을 가지고 그 국가에 있는 모든 연구팀에 불신을 가질 것이란 예상 역시 억측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황우석 교수에 의해 국익이 많이 손상되었다고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사건은 황우석의 몰락, 피디수첩의 승리, 이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진실의 승리이고, 그 진실을 대한민국에서 자체적으로 제기하고 자체적으로 밝혀냈다는 데에서 온 국민의 승리로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봅니다. 만약 이 사건이 새튼 또는 사이언스 측에 의해 제기되고 그들의 자체조사를 그냥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이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네티즌들의 치열한 토론과 이성을 찾아가는 모습은 결국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 부정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음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름없는 과학자와 네티즌들이 참여하였음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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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기자회견 후
이렇게 2라운드가 시작되는군요.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으로 예상했던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은... 제 기대와 다른 내용을 밝히셨더군요.
이미 학자로서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은 한번 하셨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에 기대를 했던 제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많이 들었는데, 오늘은 분노가 더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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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직도 음모론을 믿으신다면 (2005년 12월 23일)
통계 처리에서 상관분석 (correlation) 이라는 것이 있다. 두 변인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를 계산하여 상관계수 (보통 r) 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1에 가까울수록 두 변인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이 관련성이 꼭 인과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통계학개론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얘기는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논리학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두 사건이 선후관계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황당한 예를 들면, 내가 편의점에 가서 빵을 사먹고, 다음 사람이 우유를 사먹었다고 하자. 나는 이 사람과 일면식도 없는데, 단지 이 사람은 내 다음에 계산대에 섰을 뿐인데, 내가 빵을 샀기 때문에 다음 사람이 우유를 샀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이번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을 둘러싸고 수많은 음모론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나도 나름대로 음모론을 좋아하는 편이다. 잘 짜여진 한편의 음모론은 우리의 무릎을 치게 만들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들은 너무나 수준이 낮아서 지적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못할 지경이다.
사건 초기에는 성체줄기세포 진영과 기독교 세력이 등장하는 음모론이 회자되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좌절시키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이 음모론은 섀튼과 미국까지 등장하면서 애국주의 소설로 발전해갔다. 즉, 황교수를 주저앉히고 미국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하여 특허까지 뺏아가려한다는 그런 논리였다.
한편으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방해하려는 성체줄기세포 진영과 기독교 세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미국(캘리포니아주)과 섀튼이 있고... 음모론 대로라면 서로 적대해야 할 두 세력인데, 한 이야기 안에서 황우석 한명 죽이려고 두 세력은 연대를 하게 된다! 이 얼마나 허술한 음모론인가?
노성일 이사장이 폭탄선언을 하고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미즈메디와 코스닥 업체 메디포스트가 주도하는 음모론이 급속도로 퍼졌다. 이 역시 노성일이 성체줄기세포 쪽으로 돌아서면서 황우석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 다음날 메디포스트와 미즈메디의 합작 법인 설립 발표가 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하려면 꼭 황우석을 죽여야 하나? 황우석 박사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아왔고, 성체줄기세포 쪽은 주로 코스닥 상장 등으로 통해 투자자를 확보해왔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코스닥 바이오 주식들 중에 배아줄기세포를 다루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몇몇 정통 바이오 주식은 성체줄기세포의 상용화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제대혈 보관업체, 유전자 검사업체 등 초보적인 수준의 바이오 주식들이다. 근데, 지난 1년 내내 이 주식들은 황우석 박사가 무슨 업적을 발표할 때마다 상한가를 쳐 왔다. 즉, 사업내용은 거의 관련성이 없지만, "바이오 주식"으로 분류됨으로써 황우석 교수의 성과에 주가가 덩달아 급상승해 왔던 것이다. 만약 "황우석 죽이기"가 성공하면 일차적인 피해자는 이 바이오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 몇일간의 코스닥 폭락이 그것을 증명한다. 메디포스트를 비롯, 성체줄기세포 연구업체들이 "황우석 죽이기"에 나설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황우석 교수가 계속 연구성과를 발표하면 주식시장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그럼으로써 보다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아픈 지적을 한가지 하자면, 이번 사건의 음모론들에는 공통적으로 두가지 전제가 반드시 깔려있다. 첫째, 황우석 연구팀이 가진 기술은 누구나 탐내는 엄청난 기술이다. 둘째, 황우석 교수는 피해자이다.
이런 전제를 깔고 이야기가 구성되기 때문에, 섀튼과 미국은 황팀의 줄기세포 기술을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성체줄기세포 진영은 황팀의 몰락을 바랬고, 김선종과 노성일은 황우석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사진 조작과 세포 바꿔치기를 했고, 우리의 선한 황우석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당하기만 했다...는 식으로 음모론들은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가지 전제 모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황우석 교수가 피해자라는 전제는 이번 논문 조작에 그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서울대 발표를 통해 상당 부분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본다. 황우석 팀의 기술... 백보 양보해서 황팀이 체세포복제 줄기세포를 확립할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우리나라에 수십조의 국익을 가져오기에는 너무나 먼 얘기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트랜지스터 만드는 원천기술이 있어서 반도체로 그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디지털 TV의 원천기술은 LG 전자(의 자회사인 제니스)에게 있지만, 세계 유수의 가전제품 회사들이 모두 디지털 TV를 만든다. 소액의 특허료를 지불하고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황교수팀에게 "원천기술"이라는 게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엄청난 부를 안겨줄 가능성은 극히 낮고, 따라서 전세계가 탐을 낸다는 것도 그리 제대로된 가정이라고 볼 수 없다.
앞서 관련된 사건, 전후의 사건이라고 해서 함부로 인과관계로 해석해서는 안됨을 지적하였다. 잘 짜여진 음모론은 적어도 관련있는 사건과 전후사건을 적절히 배치하고, 그 사건들 사이를 인과관계를 엮어놓음으로써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황우석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들은 음모론의 기본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게 대부분이다. 인터넷의 한 구석에서 뭔가 엄청난 진실을 담은 음모론을 발견하고 싶은 욕구에 충만해 있긴 하지만, 지적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음모론들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두번째 글은 브릭을 중심으로 논문 조작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급기야 노성일 원장이 "줄기세포는 없다"는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에 썼습니다.
세번째 글은 이미 논문조작임이 명백히 드러난 상태에서 논점을 이탈하는 각종 인터넷의 주장들, 특히 음모이론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서 썼던 글입니다. 제 다른 홈피에 있던 글들인데 이제 그곳을 문닫게 되어서 그냥 이곳에 이렇게 옮겨와 봅니다.
목차
1. 상식있는 과학자의 태도는... (2005년 12월 9일)
2. 대한민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2005년 12월 16일)
3. 아직도 음모론을 믿으신다면 (2005년 12월 23일)
1. 상식있는 과학자의 태도는... (2005년 12월 9일)
처음 PD수첩에서 황우석 박사 연구의 난자취득 문제를 지적했을 때 누리꾼들의 반응은 이해못할 것이 아니었다. 과학하는 사람이 뭔가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 미국에서는 간단한 설문지만 돌리려고 해도 Human subject consent form에 한명한명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많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그래서 동양적 윤리와 서양적 윤리가 다르다고 강변할 때도 나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비록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내려면 그들의 윤리규정과 연구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나름의 기준도 그들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은가 라는 반발심도 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연구진위 문제로 초점이 바뀌면서 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자를 그런 식으로 취득한 건 결정적인 흠은 아니다. PD수첩이 오버했다는 데에 어느정도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뭔가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터넷의 여론은 이 검증 시도조차 "오버질"이라고 매도를 하고 있었다.
360 여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낸 사람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와일즈 박사였다. 그가 증명을 발표하는 그 순간, 많은 수학자들은 경탄과 감격 속에 그의 증명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증명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 와일즈 박사는 몇달간 칩거하면서 그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 모두의 인정을 받는 증명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상식적으로, 연구의 진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면 그 진위를 밝히기 위한 증거물을 내어놓거나 그 연구결과가 올바름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와일즈 박사가 그러했듯이, 반론의 여지를 없에면 되는 것이다.
근데, 황우석 연구팀 측의 대응은 다소 상식 밖이었다. 실험과 데이터로 얘기를 해야할 과학자들이 언론사의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DNA 검증을 위해 넘겨준 샘플에 쥐세포를 사용했음에도 사람 세포를 사용했다고 얘기하여 정상적인 DNA가 검출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황우석 연구팀과 PD수첩, 쌍방이 합의한 변호사가 입회한 DNA 실험에서 양측 모두의 오류가 있었다면 재검증을 해서 진실을 밝히면 된다. 그런데 재검증은 또 못하겠다고 한다. 그냥 우리는 황우석 연구팀을 "믿고" 이대로 "덮고" 그들이 또다시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논문을 실으면 환호나 질러야 한단 말인가?
난 이게 상식이라고 믿었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꼼짝못할 증거를 내어놓음으로써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고 비로소 권위도 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기분 나쁠 것이다. 나 역시 피땀흘려 연구한 내 논문에 대해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고 고마울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오류가 수정되고 나의 학문적 능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누리꾼들이 분노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과학자가 논문으로 황박사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일개 언론"이 감히 검증을 하자고 덤볐다는 데 있다. 너희 MBC는 그만큼 윤리적이고 그만큼 전문적이고 그만큼 국익에 보탬이 되었느냐는 자격 논란이다.
하지만 이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MBC 역시 PD들이 주체가 아니라 자문 과학자들이 있고 DNA 검사 역시 전문업체에서 실시하였다. 무엇보다, 황우석 연구팀의 일원(그 역시 과학자이다)이 의문을 제기하였고, 취재결과 다른 연구원들도 그 제보를 뒷받침하는 증언을 해줬고 세포 사진이라는 물증도 있고 (이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검증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나설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PD수첩이 아니라도, 이정도의 사실을 알고 있는 그 누군가는 반드시 의문을 제기하였을 것이다.
연구의 진위 문제가 불거진 논문의 핵심은 상식있는 일반인이면 이해가 가능하다 (물론 논문자체는 엄청 전문적이지만, 핵심 내용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난자 200개에 하나 정도의 수율로 체세포 복제가 성공하였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는 새로운 방법 (소위 젓가락질이라 불리는)으로 그 수율을 10배나 높여서 체세포 복제 후 줄기세포를 11개나 확립해냈다는 점이다.
근데,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실제로는 3개밖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걸 11개로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혹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나? 그 11개 줄기세포의 DNA와 복제에 사용된 체세포의 DNA가 같은지 다른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괜시리 체세포 복제를 재시연하는 식의 복잡한 과정도 필요가 없다. 다들 스너피의 성공을 믿기 때문에 황박사 연구팀에서 체세포를 복제할 수 있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우석 연구팀은 이미 사이언스에 논문을 낼 때 DNA 일치여부를 검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괜한 흠집내기가 아니라, 신뢰할만한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 현재 형편이다. 논문을 낼 때 DNA 검사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한번 더 못할 이유는 없다. 재검사를 통해 이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면 황우석 연구팀 측에서도 즉각 환영할만한 사안이 아닌가 말이다. 괜시리 기자회견하고 미국 왔다갔다 한다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샘플 채취해서 공개적으로 DNA 검사를 하는 것이 시간을 훨씬 절약하고 진정 과학자다운 해결방법이 아닌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황우석 연구팀측의 대응은 나를 설득시킬만큼 결정적인 걸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역시 가슴 한켠에 의문을 가지고 사태가 이렇게 덮이는 걸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오히려, 이 논란을 폭발시킨 누리꾼들의 댓글은 우리사회에 또다른 고민을 던져준다.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황우석 연구팀을 그만 괴롭혀라, 수십, 수백조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이 연구를 위해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데 왜 발목을 잡아서 연구를 지연시키느냐, 이건 황우석을 매장시키려는 국제사회의 음모이다... 사이언스가 검증했는데 왜 재검증이 필요하냐 (분명히 사이언스는 DNA 검사까지 하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상대로 미분방정식의 증명을 해달라는 식 아니냐 (논문을 이해시켜달라는 게 아니라 DNA 검사만 하자는 것이다)... PD수첩이 결국 비윤적인 취재를 한 게 드러났다 (그렇다고 연구결과가 진실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급기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덧글까지...
이 모든 것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다. 쟁점은 단순하고 해결방법 역시 단순하다. 논문의 진위가 합리적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의심을 해소하려면 복잡한 시연 같은 것도 필요없고 DNA 검사만 하면 된다. 기자회견이나 다수결로 논문의 진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위를 가리는 게 맞다. 진실을 밝히자는 사람들의 입을 폭력적으로 막으면 일시적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있겠으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진다. 그것은 황우석 연구팀의 승리 또는 PD 수첩의 승리가 아니라 바로 진실의 승리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핵심을 벗어난 얘기들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이 논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가?
나는 인터넷의 상호작용과 자정능력을 지금껏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바탕한 주장은 즉각 반박이 되었고,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글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설득력있는 글은 "펌질"을 통해 곳곳에 유통되었고 "논객"이라는 인터넷의 유명인사도 여럿 탄생하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누리꾼들의 모습은 그 상호작용과 자정능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논리 이전에 끈끈한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감정, 또는 호불호로 단순화시켜 얘기할 수 없는 어떤 가치체계 같은 것이다. 그 가치체계을 뒤흔드는 논리를 만났을 때 과거같으면 논리적인 토론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힘의 논리가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것은 누리꾼들이 그동안 선거나 각종 사회적 이슈에서 거둔 성공에 기반한 일종의 학습효과로 보인다.
지금은 무어라 단정지어 말하기 힘든 것 같다. 과거 소수에 독점된 언론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던 때에 비하면 일견 진보한 형태이긴 하지만, 인터넷 여론 역시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폭력성을 띨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5년 전통의 PD수첩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황우석 연구팀은 천명이 넘는 여성들로부터 난자를 기증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상상을 초월하는 누리꾼들의 응원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이번 논란은 황우석 연구팀에게 많은 성과를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과학 외적으로 볼 때 말이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난치병 치료 시기를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는 것이리라. 아울러 많은 특허들을 세계의 다른 경쟁국가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출원해서 우리나라에 막대한 부를 선사하는 것이리라. 나는 진심으로 이들의 성공을 바란다.
하지만 과학의 논리로 볼 때 이번 논란은 해결되지 않은 채 넘어가버렸다. 그런 면에서 황우석 박사의 성과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으나, 이번 사태에 보여준 과학자로서 그의 태도에까지는 박수를 보내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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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한민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2005년 12월 16일)
결국 진실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그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재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앞의 글에서 주장하였지만, 저는 그 재검증의 결과가 황우석 박사의 성과를 입증하는 방향이길 바랬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결국 세계 속에서 한국 과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모두가 바라지 않는, 최악의 경우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해주고 있군요...
애초에 이 문제는 황우석 죽이기/살리기가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한 과학자의 연구에 대해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고, 그것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는 의혹이라면 과학적으로 해소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체세포를 복제한 줄기세포가 있냐 없냐, 있다면 그게 11개가 다 있느냐 하는 게 저를 포함한 검증을 주장한 사람들이 알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11개의 줄기세포 DNA와 체세포를 제공했던 환자의 DNA를 비교해보면 끝나는 문제였습니다. 친자확인에 널리 사용되는 DNA 지문분석으로 길어야 이틀이면 결과가 나오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곁가지로 끼어들어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황우석 죽이기"라는 주장입니다. 새튼 박사를 비롯한 유태인, 성체줄기세포 연구진영, 기독교와 카톨릭 등 종교진영 등을 얽어놓은 "소설"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여기에 비뚤어진 애국심이 더해지면서 거대한 분노의 물결이 인터넷에 흘러넘쳤지요. 이 속에서 양식있는 지식인과 과학자 역시 거대한 사이버 테러의 위협 속에서 이성적인 얘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이 문제는 황우석 죽이기/살리기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나 정치적 접근에만 익숙한 일부에서는 피디수첩 죽이기를 시도하고, 황우석 죽이기로 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이렇게 드러난 현재, 검증을 가장 열심히 주장해온 젊은 과학자들 역시 황망해하고 있습니다. 각종 증거들이 논문의 조작을 뒷받침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줄기세포가 몇개는 있지 않을까 라고 다들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과학자의 특성상,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줄기세포의 진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검증을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저 역시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성공하여 환자들을 치료하고 우리나라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 논문은 허위의 사실로 가득찬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영롱이, 진이, 스너피의 성과까지 의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민들은 그를 용서할지 몰라도, 이미 과학자로서 그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이고, 앞으로 그의 이름을 단 논문을 실어줄 학술지는 찾기 힘들 거라고 보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네티즌의 폭력성에 대해 한마디 했었습니다. 인터넷의 자정 기능에도 의문이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은 틀린 것 같아 역설적으로 아주 기쁩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 성급하게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조작 의혹, DNA 마커 유사성 의혹, 그리고 미즈메디의 또다른 논문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수록된 사진이 똑같아 보인다는 의혹까지... 이 모든 의혹이 제기되고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티즌의 힘이었습니다. 사건 초기에 20:80으로 재검증 필요를 주장하던 목소리가 극히 소수에 불과하였지만 결국 45:55까지 갈 수 있었던 것 역시 인터넷의 자정 기능을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편, 황우석 연구팀의 부정 때문에 한국의 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라느니, 한국의 연구팀들이 더 까다로운 검증에 시달릴 것이라는 걱정은 별로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황우석 교수가 한국에서는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이지만, 그건 그간 언론의 "띄우기"에 기인한 바 크고, 외국에서는 관련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문제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아울러, 과학자들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한 연구팀의 부정을 가지고 그 국가에 있는 모든 연구팀에 불신을 가질 것이란 예상 역시 억측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황우석 교수에 의해 국익이 많이 손상되었다고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사건은 황우석의 몰락, 피디수첩의 승리, 이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진실의 승리이고, 그 진실을 대한민국에서 자체적으로 제기하고 자체적으로 밝혀냈다는 데에서 온 국민의 승리로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봅니다. 만약 이 사건이 새튼 또는 사이언스 측에 의해 제기되고 그들의 자체조사를 그냥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이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네티즌들의 치열한 토론과 이성을 찾아가는 모습은 결국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 부정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음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름없는 과학자와 네티즌들이 참여하였음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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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기자회견 후
이렇게 2라운드가 시작되는군요.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으로 예상했던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은... 제 기대와 다른 내용을 밝히셨더군요.
이미 학자로서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은 한번 하셨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에 기대를 했던 제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많이 들었는데, 오늘은 분노가 더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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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직도 음모론을 믿으신다면 (2005년 12월 23일)
통계 처리에서 상관분석 (correlation) 이라는 것이 있다. 두 변인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를 계산하여 상관계수 (보통 r) 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1에 가까울수록 두 변인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이 관련성이 꼭 인과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통계학개론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얘기는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논리학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두 사건이 선후관계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황당한 예를 들면, 내가 편의점에 가서 빵을 사먹고, 다음 사람이 우유를 사먹었다고 하자. 나는 이 사람과 일면식도 없는데, 단지 이 사람은 내 다음에 계산대에 섰을 뿐인데, 내가 빵을 샀기 때문에 다음 사람이 우유를 샀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이번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을 둘러싸고 수많은 음모론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나도 나름대로 음모론을 좋아하는 편이다. 잘 짜여진 한편의 음모론은 우리의 무릎을 치게 만들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들은 너무나 수준이 낮아서 지적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못할 지경이다.
사건 초기에는 성체줄기세포 진영과 기독교 세력이 등장하는 음모론이 회자되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좌절시키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이 음모론은 섀튼과 미국까지 등장하면서 애국주의 소설로 발전해갔다. 즉, 황교수를 주저앉히고 미국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하여 특허까지 뺏아가려한다는 그런 논리였다.
한편으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방해하려는 성체줄기세포 진영과 기독교 세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미국(캘리포니아주)과 섀튼이 있고... 음모론 대로라면 서로 적대해야 할 두 세력인데, 한 이야기 안에서 황우석 한명 죽이려고 두 세력은 연대를 하게 된다! 이 얼마나 허술한 음모론인가?
노성일 이사장이 폭탄선언을 하고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미즈메디와 코스닥 업체 메디포스트가 주도하는 음모론이 급속도로 퍼졌다. 이 역시 노성일이 성체줄기세포 쪽으로 돌아서면서 황우석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 다음날 메디포스트와 미즈메디의 합작 법인 설립 발표가 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하려면 꼭 황우석을 죽여야 하나? 황우석 박사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아왔고, 성체줄기세포 쪽은 주로 코스닥 상장 등으로 통해 투자자를 확보해왔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코스닥 바이오 주식들 중에 배아줄기세포를 다루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몇몇 정통 바이오 주식은 성체줄기세포의 상용화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제대혈 보관업체, 유전자 검사업체 등 초보적인 수준의 바이오 주식들이다. 근데, 지난 1년 내내 이 주식들은 황우석 박사가 무슨 업적을 발표할 때마다 상한가를 쳐 왔다. 즉, 사업내용은 거의 관련성이 없지만, "바이오 주식"으로 분류됨으로써 황우석 교수의 성과에 주가가 덩달아 급상승해 왔던 것이다. 만약 "황우석 죽이기"가 성공하면 일차적인 피해자는 이 바이오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 몇일간의 코스닥 폭락이 그것을 증명한다. 메디포스트를 비롯, 성체줄기세포 연구업체들이 "황우석 죽이기"에 나설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황우석 교수가 계속 연구성과를 발표하면 주식시장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그럼으로써 보다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아픈 지적을 한가지 하자면, 이번 사건의 음모론들에는 공통적으로 두가지 전제가 반드시 깔려있다. 첫째, 황우석 연구팀이 가진 기술은 누구나 탐내는 엄청난 기술이다. 둘째, 황우석 교수는 피해자이다.
이런 전제를 깔고 이야기가 구성되기 때문에, 섀튼과 미국은 황팀의 줄기세포 기술을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성체줄기세포 진영은 황팀의 몰락을 바랬고, 김선종과 노성일은 황우석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사진 조작과 세포 바꿔치기를 했고, 우리의 선한 황우석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당하기만 했다...는 식으로 음모론들은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가지 전제 모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황우석 교수가 피해자라는 전제는 이번 논문 조작에 그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서울대 발표를 통해 상당 부분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본다. 황우석 팀의 기술... 백보 양보해서 황팀이 체세포복제 줄기세포를 확립할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우리나라에 수십조의 국익을 가져오기에는 너무나 먼 얘기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트랜지스터 만드는 원천기술이 있어서 반도체로 그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디지털 TV의 원천기술은 LG 전자(의 자회사인 제니스)에게 있지만, 세계 유수의 가전제품 회사들이 모두 디지털 TV를 만든다. 소액의 특허료를 지불하고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황교수팀에게 "원천기술"이라는 게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엄청난 부를 안겨줄 가능성은 극히 낮고, 따라서 전세계가 탐을 낸다는 것도 그리 제대로된 가정이라고 볼 수 없다.
앞서 관련된 사건, 전후의 사건이라고 해서 함부로 인과관계로 해석해서는 안됨을 지적하였다. 잘 짜여진 음모론은 적어도 관련있는 사건과 전후사건을 적절히 배치하고, 그 사건들 사이를 인과관계를 엮어놓음으로써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황우석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들은 음모론의 기본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게 대부분이다. 인터넷의 한 구석에서 뭔가 엄청난 진실을 담은 음모론을 발견하고 싶은 욕구에 충만해 있긴 하지만, 지적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음모론들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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