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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수능] 100 - 100 - 90점보다 91 - 91 - 91점이 우수학생 맞다

수능이 끝났다. 올해 처음 시행된 등급제 때문에 말들이 많다. 신문기사 역시 "등급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 시행이니만큼 성적을 받아든 학생들도 자신이 최종적으로 몇등급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 얼마든지 이해한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기사는 대표적인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 생각된다.
100 - 100 - 90점보다 91 - 91 - 91점이 우수학생?
http://news.joins.com/article/2950289.html?ctg=12

올해부터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는 건 3년전부터 공지된 사항이다. 고등학생들은 새로운 제도에  맞춰 지난 3년간 충분히 연습을 해왔다. 그들이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도, "100-100-90점 보다 91-91-91점이 좋은 성적이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제도에 맞춰 100점을 받기위한 전략보다는 한두 문제를 틀려도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게 올바른 학습 전략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식의 딴지를 거는 건 국내 탑 신문사의 기사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수능 제도가 이렇게 바뀌어서 억울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언어영역은 난이도가 어려워서 89점 정도가 1등급 커트라인이 될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언어영역에서 100점 받은 학생은 89점 받은 학생과 같은 등급이 되어서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또, 수리영역 가(자연계)는 문제가 쉬워서 96점 정도가 1등급 커트라인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4점짜리 한문제만 실수로 틀려도 2등급이 될 확률이 있다는 말이다. 이 또한 얼마나 억울한가?

위에 두가지 억울한 점을 얘기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말이 아주 모순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얘기해서, 언어영역에서 89점 받은 학생은 아주 운좋게 1등급이 되는 것이고, 수리영역에서 100점 받은 학생은 96점 받은 학생이랑 등급이 달라져서 기뻐할 것이다.
결국 문제가 어려워지면 고득점 받은 학생은 억울해하고 조금 실수한 학생은 덕을 보는 것이고, 문제가 쉬워지면 실수로 한두 문제 틀린 학생은 억울해하고 고득점 받은 학생은 덕을 보는 것이 이 등급제이다. 어떻든 양면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단순 총점을 합산해서 500점 만점으로 학생들을 줄을 세우면? 또 0.1점 차이로 떨어졌네 마네 하면서 언론들은 이러쿵 저러쿵 할 게 뻔하다. 수십만명의 학생을 단 한번의 시험으로 줄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 총점제를 하든, 등급제를 하든 억울한 사람은 나오게 마련이고 덕을 보는 사람도 나오게 마련이다.

결국 등급제와 함께 대입 제도를 총체적으로 보고, 과거보다 나아진 면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등급제로 바꾼 가장 큰 명분은? 입시 사정에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수시 입시에서 대학마다 부르짖어대는 "자율성"을 줘서 원하는 기준으로 원하는 학생들을 뽑으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올해 초 소위 상위권 사립대학들이 한 짓이 무엇이었던가? 학생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가? 학생부 성적 1등급에서 4등급까지를 동점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변형된 본고사인 논술시험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세우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토록 입시자율을 부르짖어대는 대학들이 "좋은 학생"을 뽑을 "좋은 방법"에 대한 연구는 게을리한 채, 학생부 실질반영비율은 한자리수로 만들어버리고 수능 반영비율을 높여버렸기 때문에 수능의 한 등급이 대학의 수준을 결정해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이번 고3들...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치고 이제 등급제 때문에 가슴 졸여야 하고... 너무나 힘든 것 이해한다. 하지만 "등급제는 최악의 제도이다" 라며 교육부를 욕하기 이전에 대학들이 수능등급제와 학생부 등급제를 어떻게 말아먹었는지도 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 잘난 대학의 "입시 자율"이 도대체 어떤 방향을 의도하고 있는지도 함께 말이다.
... 물론 이런 질문은 절대 논술 문제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