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촛불문화제와 거리행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가 없었다. 현장에 갈 수가 없다는 한계 때문에 덧붙일 말도 없었다. 그동안 한 일은 변화한 거리행진, 또는 가두투쟁에 어리둥절해하며 그 변화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 때 참여했던 가두투쟁과 너무나 다른 양상... 이것은 2002년 월드컵 때 거리를 내달려본 세대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집회 문화임에 틀림없다.
80-90년대, 우리는 각 대학에서 집회를 연 후, 비밀스럽게 "택 (Tac - tactic)" 이라는 걸 전달받고 가두투쟁 장소로 버스, 지하철을 타고 각자 이동했다. 보통 종로, 광교, 을지로, 명동 등이 1차 집회 장소로 결정되었다. 이동과정에서 제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피켓 같은 건 들고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피 (P - pamphlet)라고 불리는 시민들에게 나눠줄 전단을 품 속에 조심스럽게 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시내에 모여서는 택 장소 근처에 어슬렁거리다가 지도부의 신호에 따라 거리로 모여들어 갑자기 차도를 점거한다. 수천, 수만으로 불어나는동안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주변 시민들에게 "선전전"이라는 걸 한다. 주로 피를 나눠주고 대자보를 붙이고, 간단하게 시민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다. 이쯤되면 전경과 백골단이 등장하고 그들이 대열을 갖추면 최루탄을 쏘고, 우리는 "전투조"가 대열 앞으로 나가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본대를 보호한다. 본대는 지도부의 상황 파악에 따라 돌파를 시도하거나 2차 집결장소로 이동한다...
잠시나마 과거를 회상하며 낭만에 잠겼는데... ^^
우리 세대는 이러한 가두투쟁을 전부로 알아왔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민들의 불편은 아랑곳 않았다. 차선을 점거해서 그곳을 "해방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전경 역시 우리와 같은 나이의 젊은이라는 것 역시 머리 속에 없었다. 제복을 입은 이상 "독재정권의 주구"이고 그들의 폭력에 우리 역시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신고하지 않은 집회가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집시법) 자체가 집회를 억제하기 위한 법률이라 믿고 있었고, 미리 신고한다면 집회 장소가 원천봉쇄 되기 때문에, 즉 비밀이 세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집회 신고를 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2008년 6월,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이들은 옛 세대와 무엇이 다른가?
첫째, 영리하다.
우리 세대는 무식했다. 정보가 없다는 점에서도 무식했고, 국가공권력(전경)과 힘으로 대결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무식했다. 우리는 "정의롭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정의로운 우리를 독재정권이 탄압하기 때문에 도로점거, 화염병 사용 등도 불가피 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 최대한 명분에서 앞서기 위해 노력한다. 비폭력과 합법적인 행동만이 결과적으로 최대한 많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음을 알기에 비폭력을 최대한 고수하려 한다.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합법인지 알기 때문에 공권력과 보수언론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불법 행동을 최대한 자제한다. 오히려 경찰의 시위진압과 세종로 컨테이너물 설치가 도로교통법 및 문화재법을 위반한 불법임을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이 합법적인 투쟁을 견지해온 이들의 도덕적 우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둘째, 미학과 즐거움의 가치를 안다.
20년 전에는 가두투쟁을 나가는 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약간의 결의가 필요했다. 운 나쁘면 경찰에 연행되어서 흠씬 얻어터질 수도 있고, 더 운나쁘면 기소되어 민증에 빨간줄이 그일 수도 있음을 알았다. 전투조가 되어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잡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세대가 촛불을 드는 것이나 우리 세대가 화염병을 든 것이나, 그 분노의 총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신상에 관한 위험은 훨씬 덜 느끼면서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분노를 함께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즐거운 놀이"로 승화시킨다. 피켓 하나 없이 오로지 "쪽수"로 밀어붙였던 우리세대와 달리, 개성 톡톡 넘치는 피켓과 스티커로 집회 참여자와 구경꾼을 모두 미소짓게 한다. 5분 발언은 비장한 결의를 밝히는 기회가 아니라, 좀더 쉽게 좀더 재미있게, 그리고 좀더 설득력있게 논리를 설파하는 장이되고 있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퍼포먼스들... 조중동 본사에 대한 낙서들... 청와대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는 이벤트 등...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촛불집회는 말 그대로 "문화제"가 된다.
세째, 이성이 아닌 감성,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참여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세대는 "이 정권 나빠요"에 초점을 맞췄다. 왜 그들은 나쁜지, 왜 우리는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촛불세대들은 차가운 이성과 함께 "재미"라는 EQ 역시 함께 발달한 듯 싶다. 촌철살인의 댓글 문화가 그대로 연장되어 피켓에도 펼침막에도, 재미없는 구호는 인기가 없다.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한번씩 보면 관람객들이 현장에서 노트에 끄적인 응원문구를 들고 있고 그 중 재밌는 것을 TV에 보여준다. 사회자는 그것에 한마디 하고, 그러면 코멘트에 반응하는 댓글같은 형식의 응원문구가 또 등장하고... 이러한 놀이들이 촛불집회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한편, 우리세대는 가두투쟁에 나가면 "선전전"이라는 걸 했다.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팜플렛을 나눠주고 즉석에서 연설을 하는 것이다. "소통"에 대한 고민은 사치였다. 거리에 나선 학생들이 시민들의 "입"이었고, 시민들은 박수와 먹을거리 등으로 응원을 해주는 정도였다. 청와대로 진격해야할지를 놓고 토론을 하고, 명박산성 앞에서 이것을 넘어갈지에 대해 몇시간씩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동안 얼마나 성숙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네째, 인터넷과 휴대폰이라는 최신 무기를 갖고 있다.
우리세대는 가투를 다녀온 다음 날, 신문을 보며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루는 그들의 방식에 분개하곤 했다. 우리의 주장을 알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매스컴인데 그들이 우리를 다뤄주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유달리 기자를 지망한 친구들이 많았던 게 우리세대였다.
2008년 6월. 신문과 방송만 매스컴인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오마이뉴스를 비롯, 수많은 UCC에서 촛불집회를 생.중.계.한다. 시민기자들이 캠코더와 노트북만 가지고도 "방송"을 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디카와 폰카로 무장한 시민들은 집회 구석구석을 찍어와 다음날 블로그는 집회 사진으로 성황을 이룬다. 경찰이 폭력진압을 하려하면, 우리 때는 시민들에게 목청높여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지금은 수많은 눈들이 조용히 디카를 꺼내들 뿐이다.
다음날, 촛불세대는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린 후 다음 아고라로 향한다. 정부의 묵묵부답에 대책을 촉구하고, 고식적 해결책에 조롱을 퍼붓는다. 전날 집회에서 생겨난 이슈들은 수많은 토론글과 댓글들 속에서 합의가 도출된다. 불과 하루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층 업그레이드된 "개념"을 머리 속에 넣고, 피켓에 담고 저녁에는 또 촛불을 든다...
정보는 빛을 타고 흐르고, 사람들의 의견 역시 빛을 타고 흐르고, 그 속에서 민주주의가 찬란히 빛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이다. 전세계에서 어느 나라 국민도 해본 적이 없는 그 민주주의를 바로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들이 매일매일 실현해나가고 있기에.
대학 때 참여했던 가두투쟁과 너무나 다른 양상... 이것은 2002년 월드컵 때 거리를 내달려본 세대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집회 문화임에 틀림없다.
80-90년대, 우리는 각 대학에서 집회를 연 후, 비밀스럽게 "택 (Tac - tactic)" 이라는 걸 전달받고 가두투쟁 장소로 버스, 지하철을 타고 각자 이동했다. 보통 종로, 광교, 을지로, 명동 등이 1차 집회 장소로 결정되었다. 이동과정에서 제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피켓 같은 건 들고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피 (P - pamphlet)라고 불리는 시민들에게 나눠줄 전단을 품 속에 조심스럽게 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시내에 모여서는 택 장소 근처에 어슬렁거리다가 지도부의 신호에 따라 거리로 모여들어 갑자기 차도를 점거한다. 수천, 수만으로 불어나는동안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주변 시민들에게 "선전전"이라는 걸 한다. 주로 피를 나눠주고 대자보를 붙이고, 간단하게 시민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다. 이쯤되면 전경과 백골단이 등장하고 그들이 대열을 갖추면 최루탄을 쏘고, 우리는 "전투조"가 대열 앞으로 나가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본대를 보호한다. 본대는 지도부의 상황 파악에 따라 돌파를 시도하거나 2차 집결장소로 이동한다...
잠시나마 과거를 회상하며 낭만에 잠겼는데... ^^
우리 세대는 이러한 가두투쟁을 전부로 알아왔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민들의 불편은 아랑곳 않았다. 차선을 점거해서 그곳을 "해방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전경 역시 우리와 같은 나이의 젊은이라는 것 역시 머리 속에 없었다. 제복을 입은 이상 "독재정권의 주구"이고 그들의 폭력에 우리 역시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신고하지 않은 집회가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집시법) 자체가 집회를 억제하기 위한 법률이라 믿고 있었고, 미리 신고한다면 집회 장소가 원천봉쇄 되기 때문에, 즉 비밀이 세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집회 신고를 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2008년 6월,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이들은 옛 세대와 무엇이 다른가?
첫째, 영리하다.
우리 세대는 무식했다. 정보가 없다는 점에서도 무식했고, 국가공권력(전경)과 힘으로 대결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무식했다. 우리는 "정의롭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정의로운 우리를 독재정권이 탄압하기 때문에 도로점거, 화염병 사용 등도 불가피 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 최대한 명분에서 앞서기 위해 노력한다. 비폭력과 합법적인 행동만이 결과적으로 최대한 많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음을 알기에 비폭력을 최대한 고수하려 한다.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합법인지 알기 때문에 공권력과 보수언론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불법 행동을 최대한 자제한다. 오히려 경찰의 시위진압과 세종로 컨테이너물 설치가 도로교통법 및 문화재법을 위반한 불법임을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이 합법적인 투쟁을 견지해온 이들의 도덕적 우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해외토픽감인 명박산성,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둘째, 미학과 즐거움의 가치를 안다.
20년 전에는 가두투쟁을 나가는 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약간의 결의가 필요했다. 운 나쁘면 경찰에 연행되어서 흠씬 얻어터질 수도 있고, 더 운나쁘면 기소되어 민증에 빨간줄이 그일 수도 있음을 알았다. 전투조가 되어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잡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세대가 촛불을 드는 것이나 우리 세대가 화염병을 든 것이나, 그 분노의 총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신상에 관한 위험은 훨씬 덜 느끼면서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분노를 함께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즐거운 놀이"로 승화시킨다. 피켓 하나 없이 오로지 "쪽수"로 밀어붙였던 우리세대와 달리, 개성 톡톡 넘치는 피켓과 스티커로 집회 참여자와 구경꾼을 모두 미소짓게 한다. 5분 발언은 비장한 결의를 밝히는 기회가 아니라, 좀더 쉽게 좀더 재미있게, 그리고 좀더 설득력있게 논리를 설파하는 장이되고 있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퍼포먼스들... 조중동 본사에 대한 낙서들... 청와대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는 이벤트 등...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촛불집회는 말 그대로 "문화제"가 된다.
세째, 이성이 아닌 감성,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참여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세대는 "이 정권 나빠요"에 초점을 맞췄다. 왜 그들은 나쁜지, 왜 우리는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촛불세대들은 차가운 이성과 함께 "재미"라는 EQ 역시 함께 발달한 듯 싶다. 촌철살인의 댓글 문화가 그대로 연장되어 피켓에도 펼침막에도, 재미없는 구호는 인기가 없다.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한번씩 보면 관람객들이 현장에서 노트에 끄적인 응원문구를 들고 있고 그 중 재밌는 것을 TV에 보여준다. 사회자는 그것에 한마디 하고, 그러면 코멘트에 반응하는 댓글같은 형식의 응원문구가 또 등장하고... 이러한 놀이들이 촛불집회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한편, 우리세대는 가두투쟁에 나가면 "선전전"이라는 걸 했다.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팜플렛을 나눠주고 즉석에서 연설을 하는 것이다. "소통"에 대한 고민은 사치였다. 거리에 나선 학생들이 시민들의 "입"이었고, 시민들은 박수와 먹을거리 등으로 응원을 해주는 정도였다. 청와대로 진격해야할지를 놓고 토론을 하고, 명박산성 앞에서 이것을 넘어갈지에 대해 몇시간씩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동안 얼마나 성숙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네째, 인터넷과 휴대폰이라는 최신 무기를 갖고 있다.
우리세대는 가투를 다녀온 다음 날, 신문을 보며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루는 그들의 방식에 분개하곤 했다. 우리의 주장을 알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매스컴인데 그들이 우리를 다뤄주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유달리 기자를 지망한 친구들이 많았던 게 우리세대였다.
2008년 6월. 신문과 방송만 매스컴인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오마이뉴스를 비롯, 수많은 UCC에서 촛불집회를 생.중.계.한다. 시민기자들이 캠코더와 노트북만 가지고도 "방송"을 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디카와 폰카로 무장한 시민들은 집회 구석구석을 찍어와 다음날 블로그는 집회 사진으로 성황을 이룬다. 경찰이 폭력진압을 하려하면, 우리 때는 시민들에게 목청높여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지금은 수많은 눈들이 조용히 디카를 꺼내들 뿐이다.
다음날, 촛불세대는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린 후 다음 아고라로 향한다. 정부의 묵묵부답에 대책을 촉구하고, 고식적 해결책에 조롱을 퍼붓는다. 전날 집회에서 생겨난 이슈들은 수많은 토론글과 댓글들 속에서 합의가 도출된다. 불과 하루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층 업그레이드된 "개념"을 머리 속에 넣고, 피켓에 담고 저녁에는 또 촛불을 든다...
정보는 빛을 타고 흐르고, 사람들의 의견 역시 빛을 타고 흐르고, 그 속에서 민주주의가 찬란히 빛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이다. 전세계에서 어느 나라 국민도 해본 적이 없는 그 민주주의를 바로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들이 매일매일 실현해나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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