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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 협상, 광우병으로 논점을 흐리지 말라

국민들이 열받은 건 광우병이 아니라 졸속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탓 입니다.
인간광우병(vCJD)에 대해서는 아직 한창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아래 글에 통계 숫자만으로 제 나름대로 계산해 봤습니다만, 그리 큰 위험은 아닌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왜 대통령 탄핵 청원은 100만이 넘는 숫자가 서명을 하고, 촛불집회는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가? 광우병 위험이 과장되어 있고 진실만 밝히면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제 생각에 지금 사태는 다음 네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인간광우병은 일단 발생하면 100% 치사율을 보인다.
2. 인간광우병은 10년에서 30년에 이르는 잠복기를 갖는다.
3. "소공장"이라 불리는 미국의 축산업 실태 - 이미 TV를 통해 분뇨와 함께 뒹구는 미국소도 구경했고 걷지 못하는 소(Downer Cow)를 전기충격기로 일으켜세워 검역을 받는 장면도 목격했고, 동종은 아니지만 여전히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공급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4. 검역 주권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양보한 이번 협상 결과 - 세계 어느나라보다 가장 먼저 30개월 이상 소를 수입하고 SRM 부위 역시 2군데로 축소한 점.


1. 인간광우병은 일단 발생하면 100% 치사율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인간광우병의 전염성이나 발병율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저도 물론 동의합니다. 하지만 일단 걸리면 죽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내가 걸릴 확률은 아주 낮겠지만 걸렸다하면 죽는다... 무시무시한 병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병에 걸리지 않을 방법을 최대한 시도할 겁니다. 그런데 굳이 이 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짓을 왜 이 정부가 하느냐...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미국 쇠고기... 꼭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수입하냐? 이렇게 논리가 발전하는 것이지요

2. 인간광우병은 10년에서 30년에 이르는 잠복기를 갖는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확률 10억분의 1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대도 그게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지금 잠복기에 있는 사람은 얼마인지 모른다" 이 한마디면 끝이니까요.
더군다나 미국 목장주 협회가 강력한 로비단체라는 점, USDA와 미국 목장주 협회 사이의 회전문 문제, 전체 소의 0.1%만 검사하는 구멍둟린 미국의 검역 시스템 등등... 객관적 사실과 정황만으로도 발표된 통계를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개인 목장이 자신의 소 100%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려는 시도를 USDA가 금지시켰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3. "소공장" 미국의 축산업

Downer Cow들이 모두 광우병에 걸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소들을 전기충격봉으로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그러면 검역관은 "육안"으로 소의 건강 여부를 판별하는 게 현재 미국의 검역시스템이라고 하는군요. 이런데 "미국 광우병 소는 3마리 뿐이다" 이 통계를 믿으라구요?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통계 시스템이 어떤지를 어느정도 아는 저는, 합리적인 증거가 없는 한 이걸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국민들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지요? 어릴 적 우리집 외양간에서 자라던 송아지를 보고 자란 분들은 "소공장" 영상만으로도 당장 내일부터 식탁에서 쇠고기를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채식주의자들 중에는 "건강" 때문이 아니라 "동물 학대" 때문에 채식주의를 선택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4. 검역 주권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양보한 이번 협상 결과

무엇보다 분노를 사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아마츄어적인 협상 태도입니다. 좀 길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1) 노무현 정권의 설겆이이다.
인수위에게 "미국에서 자동차 문제를 얘기하면 쇠고기와 빅딜을 해라"고 전달했다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동차 문제를 얘기했나요? 얻은 것도 없는데 그냥 줘버린 꼴입니다. 다음에 반도체, 휴대폰 이런 걸로 걸고 넘어지면 그때 빅딜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덜컥 줘버렸습니까?

2) 이명박의 방미 선물
가장 의심을 사는 것이 이것이지요. 캠프데이비드 숙박 비용이라고... 날짜도 기묘하게 총선 직후에 협상을 시작했고, 아주 짧은 시일 안에 협상을 타결지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날짜 전에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했겠지요.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캠프데이비드 초청은 없던 일이 될거라는 협박도 들었겠지요. 대통령의 방미 "모양새" 때문에 졸속적으로 합의해버린 협상단의 태도가 가장 큰 분노를 사고 있는 것입니다.

3) 미국소는 안전하다는 정부관리의 발언들
복어의 독처럼 쉽게 제거된다, 그렇게 위험하면 비행기는 왜 타냐... 이런 식의 뻔뻔스런 발언들이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인터넷에 나도는 말들이 괴담이라면 "SRM은 복어의 독처럼 쉽게 제거된다"는 말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미국협상단을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논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협상단은 이랬을 것입니다. "미국의 광우병 소는 3마리에 불과하다. 그나마, 미국 소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린 케이스는 한 건도 없다. 그런데 왜 미국 소 수입을 금지하느냐?"
또, "30개월 이전이냐 이후냐에 따라 광우병 위험도가 증가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 30개월 넘는 소는 수입을 막느냐?", "광우병 발병 확률이 이렇게 낮은데 왜 SRM 부위 수입을 막느냐?", "미국소 전량을 검역하려면 우리도 한국의 수출 농산품에 대해 전량 검사하겠다."
이런 등등의 논리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준비가 허술했으면 모든 걸 양보하고 왔냔 말입니다.

미국과 하루이틀 협상해봅니까? 미국 협상단은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미국 법대에서 가르치는 것이 "상대방의 논리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을 반박할 논리를 내가 만들어내지요. 또, 레퍼런스를 인용하고 통계 숫자를 인용하며 내 주장을 펼치는데에 아주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과연 얼마나 준비를 하였기에 총선 직후에 그들의 바램대로 쇠고기 협상을 시작하고 대통령 방미 직전에 협상을 마무리 짓느냐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재협상이 유일한 길입니다.
미국이 아무리 재협상 불가를 얘기해도 "국민의 뜻"이니 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합니다. 이대로 성의없는 모습을 보이면 한나라당 의원들, 재보궐선거에서 다 낙선할 것이고 다음 총선도 기약하기 힘들 거라고 얘기하세요. 다시한번 제 2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 당신네들(미국) 얼마나 힘들겠냐고 협박을 해서 꼭 재협상 이뤄내도록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