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영화

내가 숨쉬는 공기 (The Air I Breathe, 2008),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되는.

이 영화는 다 보고 나면 "내가 어떤 느낌을 받아야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보다 심플하게, "재밌었어", "잘 만들었어", "지루했어"... 이런 식의 반응이 아니라 "이건 뭐지?" 이런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한국인 감독의 헐리우드 작품이라는 점, 최고배우들이 시나리오만 보고 출연 약속을 했다는 소식, 로버트 알트만식 옴니버스 등등은 다 접어두자.
무엇보다 이 영화의 최고 미덕은 장면들이 아주 중의적(重義的)인 내용이라는 점, 그래서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낳는다는 점,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마디 하지 않고는 입이 근질거리도록 만든다는 점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는 키워드는 다음 세 가지라고 생각된다.
제목: 내가 숨쉬는 공기

첫 인용문: 어떤 감정도 그 고유의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한다. 마치 파도처럼...

앤디가르시아의 대사: 잃고 나서야 우리가 무얼 가졌는지 알게되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행복
자신이 나비가 되기 직전의 누에고치인지 모르고, 권태로운 삶을 사는 한 은행가, 포레스트 휘테커... '한방'을 노리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지경에 처한다.

"내가 숨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온 일상, 그 일상을 잃고 나서야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이었는지 알게되겠지..."


기쁨
미래를 보는 능력 때문에 감정마저 잃어버린 브랜든 프래이저. 자신이 본 미래가 틀렸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이제부터는 미래를 바꾸려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집단구타를 당하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오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것이 기쁨에 대한 해석이라면, 앤디 가르시아식 해석은,

"내가 숨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운 '미래를 보는 능력', 그 능력을 잃고 나서야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 - 가깝게는 집단 구타, 멀게는 죽음 - 을 막을 수 없음을 알게되겠지..."
그럼에도,
"그 능력을 잃고 나서야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기쁨을 알게 되겠지..."


슬픔
어린 시절,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빠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라 미셸 겔러.
여차저차하여 브랜든 프래이저의 집에 숨어서 긴장된 생활이 이어지는데,
이제 내일이면 해방된다는 그 기대가 팽팽한 삶에 균열을 가져오면서 한 순간의 실수로, 바로 자신의 실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잃게 되는 슬픔...

"내가 숨쉬는 공기처럼 일상화된 슬픔과 긴장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음을 그를 잃고 나서야 알게되겠지..."


사랑
24시간 안에 수혈을 해야하는 사랑하는 사람, 줄리 델피.
그녀가 친구의 부인이라서 케빈 베이컨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내가 숨쉬는 공기처럼 항상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내 친구의 부인이자 내 사랑,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게 되자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거지..."


결국,
슬픈 여가수에게
행복 편의 포레스트 휘테커는 재물을,
기쁨 편의 브랜든 프레이저는 아기를,
사랑 편의 케빈 베이컨은 생명과 탈출을
선사하고

슬픈 여가수는 밝은 배경의 도심을
당찬 표정으로
자신있게 걸어가며
새 인생을 산다...

다시한번,
어떤 감정도 그 고유의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한다. 마치 파도처럼...

행복을 자동차로 치면서 아버지의 교통사고 장면을 떠올리며 통곡을 했지만,
눈 앞에서 권총에 맞아 죽어가는 기쁨를 보며 통곡을 했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랑에게 감동을 먹었지만,

그 감정은 그 고유의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고 두근대는 '새 삶'에 들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