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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수학이야기

내 성적은 다니는 학교가 좌우한다? - 학교효과연구가 주는 시사점

학문은 종종 상식을 배반한다.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간다"는 상대성이론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자동차에 달려있는 GPS 네비게이션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교평준화지역 교육여건 더 나쁘다"는 기사도 일종의 '배신'으로 보인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그렇게 교육여건이 더 나쁜 곳이 평준화 지역이지만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학교 여건이 더 좋으면 학생들이 공부를 더 잘 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보면 상식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연구는 그 상식을 배반하였다.
이 연구 결과는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따라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가능할 것이다. (이 주장들은 Mutually exclusive 한 것은 아니다)

1.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평준화가 성적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다는 증거는 없다.
2. 평준화 지역이 주로 중/대규모 도시이고 비평준화 지역이 주로 소도시/농어촌임을 감안할 때, 도시와 농촌의 학업성취도 격차를 보여준다.
3. 교원의 수준, 학교시설의 수준 등 정성적 평가를 도외시하고 정량적 자료만으로 단순 비교한 오류가 보인다.
4. 학교 여건과 학업성취도가 이처럼 관련이 없다면 공교육에 대한 투자는 더이상 무의미하다. 또는, 지금까지 학급당 학생수, 교원당 학생수 등을 줄이기 위해 투자한 것은 모두 '뻘짓'이었다.
5. (4번의 연장선에서) "학교 여건이 학업 성취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실 학업 성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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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4번과 5번에 해당하는 주장은 어찌보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하기에 학교 교육을 믿지 못하고 각종 사교육을 통해 점수 향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또 이런 상식에 반하는 상식 역시 존재한다. 왜 수많은 학부모들은 자식을 "교육여건이 아주 뛰어나다고 믿어지는" 국제중, 특목고에 보내려고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일까? 내신 성적까지 희생하면서 8학군에 보내려고 그 비싼 집값을 감당하는가?

학부모들의 이런 상반된 선택을 보면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 스스로 일단 미안함이 앞선다. 이 분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이거다!"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의무감을 한 (예비)학자로서 절감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미국에서 '학교 효과 연구'라는 것이 수십 년동안 이루어 졌었다. 질문은 역시 단순했다. 무엇이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가? 학교가 과연 영향을 미치는가? 영향을 미친다면 학교의 어떤 측면(예를 들면 학급당 학생수, 각종 시설 여부 등등)이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연구 문제들을 가지고 각종 통계 기법을 활용해서 수많은 교육사회학자들이 해답을 내놓기 위해 뛰어들었다. 비록 이름은 '학교 효과 연구'이지만, 연구에 투입된 변수는 학교 안의 것 뿐 아니라 학교 밖의 것(주로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SES), 학군, 가정 환경 등등)도 광범위하게 포함되었다. 
사회과학 연구가 흔히 그렇듯이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정답은 도출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몇몇 중요한 시사점들은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한가지가 "가정에 백과사전이 있으면 그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높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소 의외의 결과이지 않은가? 백과사전 하나가 그렇게 큰 차이를 가져온단 말인가? "우리 자식을 위해 오늘 당장 백과사전 한 질을 주문해야겠다!" 이렇게 마음 먹은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으리라.. ^^

이 연구 결과의 해석에서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백과사전'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백과사전을 사준다'는 행위 자체였다. 즉, 그 가격이 만만찮은 수 십권짜리 백과사전을 집에 들여놓았다는 것은 일단 그 가정의 경제적 지위가 평균 이상은 됨을 의미했다. 또 돈만 있다고 모든 학부모가 백과사전을 사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학생의 공부에 어느정도 이상의 관심이 있는 부모가 백과사전을 사준다. 이 말은 "백과사전이 거실에 꽃혀있다"는 것은 "학부모가 그만큼 학생의 학업에 관심과 투자를 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과사전을 사줄 정도의 학부모라면 각종 준비물도 꼬박꼬박 챙겨줄 것이고, 학교 내에서의 각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것이고, 학생이 별 걱정 없이 공부만 열심히 하도록 지원을 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그 학생들은 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일 것이다. 
즉, "학교여건보다는 학생의 가정환경이 학업성취도에 결국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 모든 연구의 궁극적인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부모의 돈이구나~"라고 탄식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아니, 요즘은 아버지의 직업,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돈이라는 삼위일체 이론이 '상식' 또는 '유머'로 떠돌고 있다. ^^;;;)
하지만 '가정환경'이 꼭 그런 경제적인 부분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관심과 격려, 따뜻한 배려, 믿음... 이런 것들은 돈과 관계없이 어떠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학교 효과 연구의 결과들만 놓고 보면, "내 자식 1등 만들기"위한 방법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자녀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이야 소문이 났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들이 해주길 기대하며 물질적 뒷바라지만 해주는 부모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인 것 같다.

여기서 반전... 두둥~~~
"자녀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으라"는 식의 도덕군자같은 얘기나 하면서 이 글을 끝내면... 날아들 짱돌도 문제이지만, 나 스스로 너무나 심심한 글이라서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전문가니까~" 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정답"을 내 주관적 견해를 섞어서 얘기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다만 학교 효과 연구의 한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끝내도록 하겠다.

대부분의 연구는 집단을 비교한 것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 학교와 옆 학교를 비교해서, 옆 학교는 컴퓨터실도 있고 학급당 학생수도 적고... 그래서 옆 학교 애들의 성적 평균이 더 높다. 이런 식의 집단적 비교가 주된 연구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 학부모들의 관심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기껏 그 연구들에 나오는대로 좋다는 것 다 따라해봤자, "그 집단이 그것 따라하지 않은 집단보다 성적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statistically significant) 더 높을 것입니다" 이것에 만족할 부모가 어디 하나라도 있겠는가? 내 자식이 전국 5%, 아니 1%에 들라고 고생고생하며 이것저것 시키고 있는데, "연구 결과를 따라하면 수능에서 성적이 50% 위쪽에는 위치할 것입니다" 이 정도 얘기가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그러니, 대부분의 학부모가 범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옆집 아줌마도 이렇게 해서 서울대 보냈어!" 라면서 애들을 파김치로 만들어도, 한 명의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학부모들에게 자신있게 쓴 소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오늘도 검증되지 않은 방법에 내몰리고 있는 전국의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