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보기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 Democracy2 -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운영해 보면...

democracy2

한국에서 특히 인기있는 컴퓨터 게임들이 시뮬레이션 게임이고, 저 역시 각종 게임들을 섭렵해 보았습니다. 삼국지 시리즈는 한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구요, 사업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Capitalism2, 고대 도시를 건설하는 시저3와 4, 파라오, 제우스 등등 시에라의 도시건설 시리즈, 놀이공원, 동물원 등을 운영하는 타이쿤 시리즈... 써놓고 보니 게임에 허송세월한 시간도 만만찮은 것 같네요... ^^;;;

최근에 Democracy라는 게임을 발견했습니다. 버전 1도 있고 2도 있는데, 1보다는 2가 조금더 현실적으로 바뀌었습니다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작사 홈페이지: http://www.positech.co.uk/democracy2/)
어쨌든, 한 나라의 대통령, 또는 수상이 되어서 각종 정책을 실행하고 세율을 조정하며 지출을 통제하여 무사히 연임에 성공하면서 그 나라를 "멋진 나라"로 만들어가는 그런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제작자는 "국회의원들이 임기 시작 이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할 수 있도록 이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며 일종의 홍보효과를 노렸는데, 과연 몇명이나 받아갔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ㅋㅋ

전체적으로 아~~주 재미있는 게임은 아닙니다. 약간의 중독성은 있지만, "게임을 이기는 원리"가 단순해서 그것만 알고 나면 공식처럼 몇가지 정책을 펴주고, 재정이 흑자가 되면서 내 지지율은 95%를 넘어가는 그런 happy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정책 역시 임기를 두번 정도 거치고 나면 다 써먹어서 더이상 새로 제안할 정책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게임인 것 같네요.

이 글에서는 이 게임을 자세히 소개하려는 게 아니라, 이 게임을 하면서 '정치' 또는 '통치'에 대해 새롭게 느낀 것들을 좀 얘기드릴까 합니다.

첫째, 다수는 침묵하지만 소수는 행동한다.
다음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하려면 여러 계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이 게임에는 다양한 계층과 이해집단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학부모, 중간소득층같이 인구는 많지만 온건한 집단도 있고, 환경주의자, 종교주의자처럼 그 인구는 얼마되지 않지만 무시했다가는 큰코 다치는 집단도 있습니다.
한번은 대기오염이 심각한 문제인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적자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좀 제쳐두었습니다. 그런데 환경주의자들이 계속 항의를 하면서 그들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게 되더군요. 계속 무시했더니... 결국 환경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내려오게 되었답니다... game over가 된 것이지요.
이처럼, 인구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집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봤자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 지지율은 크게 올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온건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면 지지율이 쉽게 잘 올라갑니다. 그럼에도... 이들 소수자들을 잘 달래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합니다. 아주 과격하게 말이지요.. ^^

둘째, 한 계층의 지지 여부는 하나의 사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지율을 올려서 연임에 성공하는 것이 이 게임의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낮은 집단/계층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이들에게 유익한 정책을 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게임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어느 한쪽에서 환영받으면 다른 쪽에서는 지지율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보장을 확대하면 저소득층, 사회주의자에게 환영을 받지만 자본주의자들의 지지도는 떨어집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각종 규제를 더해도 자본주의자들은 지지도가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재산세를 낮추고 공립학교 지원금을 낮추고 의료보장을 축소하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빵빵 터집니다.
따라서 게이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밀고 나가면서, 그 정책들에 불만을 갖는 세력에게는 '다른 무엇'으로 지지도를 올려야 합니다. 어차피 모든 계층/집단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습니다. 또한, 한가지 정책만 보고서 지지/반대 여부를 결정하는 집단도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이것, 이것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해 저것, 저것을 하니까 그냥 참을만하다" 이게 대부분의 경우가 아닐까요? 통치자가 타협을 하는 만큼 사회 구성원들 역시 타협을 하며, 그렇게 사회는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세째, 보수는 왜 힘을 갖는가?
어릴 때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바꿔야 할 것 투성이인데 왜 다들 현실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조금 커서는 현상을 유지하는 기득권의 힘을 보았습니다. 기득권의 저항과 회유에 변화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습니다. "한줌도 안되는" 기득권의 논리가 왜 이렇게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보수의 힘'은 저에게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지만, 이 게임은 "통치자가 느끼는 보수의 매력"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줍니다!
게임은 매 턴마다 내가 자유롭게 정책을 실행할 수도 있지만, 딜레마 상황을 꼭 하나씩 주고서 선택을 강요합니다. 예를 들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하는가, 동성혼인을 금지해야 하는가, 사유지를 개방해야 하는가, 테러리스트를 본국에 송환해야 하는가 등등 현재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을 중심으로 질문을 하고, 나는 대통령으로서 꼭 한가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실속의 나'는 각 사안마다 나름대로 견해를 갖고 있지만, '게임을 하는 나'는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택, 특정 집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그대로 유지하는 선택을 고르게 되더라는 점입니다.
매번 딜레마 상황에서 결정을 해야할 때 전형적인 사고과정은 이렇습니다. "나는 A가 마음에 드는데, 이걸 선택하면 ###들의 지지율이 확 떨어질텐데... 눈 딱 감고 A를 선택한다고 해서 ***들의 지지율이 확 올라갈까? 그냥 무난한 B를 선택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즉, 지지율 상승/하락을 머리 속으로 더하기 빼기 해본 후, 나에게 피해가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주로 보수적인 선택,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선택이었다는 점이지요... ^^

네째, 결국 정치는 경제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자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가요? 정치는 백성들이 등따시고 배부르게 먹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제가 앞에서 이 게임을 '이기는 원리'가 단순하다고 말씀드렸드는데요, 제가 게임에 익숙해진 후 매번 95%의 지지율을 얻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기술과 교육에 투자를 한다 --> 경제가 발전한다 --> GDP가 높아지면서 세율을 높이지 않아도 자연히 세금이 많이 걷힌다 --> 국가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면서 기본적으로 지지율이 높아진다 --> 흑자 재정을 바탕으로 사회복지에 투자하여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킨다 --> 빈곤, 범죄, 질병 등의 문제가 사라지면서 지지율이 높아진다 --> 계속 계속 흑자 재정을 유지하면서 각종 수치들을 미세조정해준다......

사실 정상적인 통치자라면 국민들을 등따시고 배부르게 먹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의료보장을 하려고 해도, 무주택자 지원을 하려고 해도, 실업연금, 노령연금을 지급하려고 해도... 그놈의 돈이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적자 재정이 지속되면 이런 쪽에 함부로 액수를 높이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세금을 올려서 재원을 조달하려고 해도 지지율이 팍팍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탈세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두뇌유출까지 생겨나면 이제 내 나라는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지경에 처하고 맙니다...
이 게임을 한번 해보면 교과서에서만 보아오던 악순환, 선순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

마지막으로, 같은 정책도 그 방향에 따라 필요한 정치력 (=사회적 비용)은 다르다.
상당히 시사적인 이야기라서 마지막으로 얘기드리려 합니다.
삼국지를 해보면 '통치력' 수치이던가요, 매 턴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명령의 횟수를 제한하는 숫자가 주어지지요. 나의 매력도 같은 것이 높아짐에 따라 그 통치력 수치도 올라가게 됩니다.
데모크라시에도 이와 비슷한 정치력 수치가 주어집니다. 7명의 각료당 2씩 14가 맨 처음 주어진 수치입니다. 매 턴마다 사용하고 남은 정치력에 새롭게 14가 더해지구요, 무언가 행동을 할 때 이 숫자보다 높은 수치를 가진 정책을 시행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즉, "숫자가 높을수록 높은 정치력을 요구한다 = 높은 사회적 저항을 초래한다"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새로운 정책은 20 정도의 정치력을 필요로 하고, 각 정책의 수입/지출 액수를 조정하려면 필요한 각각의 정치력 숫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이 참 현실적인 것이, 그 방향에 따라 필요한 정치력의 숫자가 큰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세금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치력이 10 정도라면 올리는 데에는 40 정도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복지 지출을 올리려면 정치력이 10 정도 필요한데 내리려면 50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저항이 적은 세금 감면, 복지 지출 확대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 예, 국가재정은 바로 파탄이 납니다. ^^

이게 참 흥미로운 건데요, 대한민국 국회에서 최근에 종부세를 대폭 축소했습니다. 게임으로 치면 정치력이 얼마 들지 않는 "세금 감면"을 실시한 것이지요. 그런데 정치력이 얼마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정책을 마구 펴다가는 나중에 후회합니다. 나중에 재정이 필요해서 세금을 더 걷으려 할 때에는 비록 똑같은 세금이지만, 감면해줄 때보다는 몇 배의 사회적 저항을 초래하게 될 것이니 말이지요. 힘들게 종부세를 입법했었고, 그것이 몇년 째 정착되어 가는 와중에 덜컥 무력화시켜 버렸고... 이걸 다시 정상화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종부세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부동산 보유세 현실화'라는 장기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도중에 있는 일종의 한시적 세금입니다. 장기적으로 보유세가 선진국 수준인 1 - 1.5% 정도가 되면 종부세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었던 법이란 말입니다.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볼까요?
현 정권이 목숨 걸고 통과시키려고 하는 미디어법 말입니다. 재벌과 신문사업자 (그냥 조중동이라 하지요..)가 지상파 종합방송 (KBS, MBC, SBS 입니다)의 주식을 2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자체가 엄청난 사회적 저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어 몇 년째 시행되고 있다고 칩시다. 조중동이 MBC를 소유하고 삼성, 현대 같은 재벌이 KBS2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언론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서 전국민적으로 이 법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일어났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지상파 방송 소유주들의 저항 자체는 차치하고라도, 이때부터는 '명분'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가 논점으로 잡힐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으로 "사유재산을 제한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요. "왜 법을 제정해서 내가 가진 주식을 맘대로 팔아라 말아라 하는냐? 위헌 심판을 청구할테다~" 이렇게 나오는 건 뻔히 예상 가능하구요, 새 법은 기존의 기득권을 인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것도 논점이 될 것이구요,  다시 공영의 품으로 돌아오는 두 방송사는 누가 주식을 소유하고 누가 운영을 할 것이냐 이런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하구요... 하여튼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 중구난방으로 얘기가 나오면서 결국 개혁 입법 시도는 좌절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러니까, 애초부터 되돌리는데에 너무나 많은 정치력이 드는 행위는 아예 하지 않아야 합니다. MBC와 KBS의 주식이 어떤 사적 단체의 소유가 되는 순간, 그 기득권을 도로 제자리로 되돌리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필요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집단이라면, '되돌리는데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법안을 강행 통과하려 하겠지요. 한나라당이 그렇게 정의롭지 못한 집단이라고 믿고 싶진 않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