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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살이

연예인 x-file, 그리고 미국의 TV 광고

지난 한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건 바로 연예인의 신상 정보가 속속들이 들어있는 소위 ‘연예인 x-file’일 것이다. 궁금한 걸 참으면 병이 되는 법. 나도 기사 아래 댓글에 써놓은 누군가의 싸이 주소로 찾아들어가 원본을 다운받아 볼 수 있었다. ^^;;;
크게 논란이 되었던 “소문” 항목은 그저 믿거나 말거나로 넘겨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 싶다. 그 보고서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광고주들에게 “이러저러한 소문들이 있으니까 이 모델을 기용하면 이런 리스크를 좀 떠안아야 할겁니다” 라는 정보를 주려는 차원에서 수집했으리라 본다. 소문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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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논란은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로 옮겨갔다. 어떻게 그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그 관리를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 유출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이다. 나는 광고모델의 신상정보를 수집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제일기획이 부도덕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광고가 스타를 캐스팅하여 제작비만 수억원을 들이고, 그걸 신문, 방송 등에 실으면서 수십억, 수백억을 쓰는 것이 기본이다. 이정도 비용을 지출하는데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면 그게 무능하다고 욕먹을 일이지, 객관적인 데이터에 바탕해서 최고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광고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너무나 합당한 행위일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입장을 이해하여 광고대행사가 광고 모델 후보들에 대해 전문가 인터뷰를 하고 스캔들이 없는지 소문에 귀를 기울여서 파일을 만들어 놓는 것은 광고 영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 입장에서는 별표로 나타난 ‘현재 위치’, ‘비전’ 정도의 정보만 기록되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소문’ 영역이 첨가되어 사생활이 낱낱이 밝혀진 데 대해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허위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분노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점 역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결국 그 문서가 유출되어 생긴 문제이지 광고대행사 차원에서 그러한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 자체는 대단히 비난받을만한 게 못되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을 교육부총리로 임명했다가 각종 스캔들이 터져서 결국 몇일만에 낙마한 일이 있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청와대의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이 경질되었다. 그들이 이기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 사실이든, 드러나지 않은 소문 차원의 정보이든, 제대로된 파일을 갖고만 있었다면 몇일동안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혼란은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에 대한 정보 수집은 필요악인듯 싶다. 자신의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수집되는 사람은 그만큼 쓰임새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만한 위치에 있기에 자신의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수집되고 활용된다는 걸 모르는 척 순진한 반응을 보인다면 차라리 그 위치를 벗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다만 개인의 사생활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정보에 대한 접근은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고, 쉽게 유출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제일기획과 동서리서치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 즉 그 중요한 개인 정보가 허술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이 될 것이다.

엊그제는 연예인들이 집단적으로 제일기획이 만드는 광고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연예인들이 모델로 출연하지 않음으로써 제일기획으로 갈 광고주들의 발길을 다른 기획사로 돌리고, 그럼으로써 제일기획에 경제적 타격을 주겠다는 발상일 것이다. 이런 힘겨루기는 결국 흐지부지 좋은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는데… 과연 이번은 어떻게 될지 좀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그것보다, 제일기획에 한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은 ‘연예인이 등장하지 않는 광고’를 이 기회에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TV 광고가 많이 다르다. 한국은 유명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광고를 찾기가 힘들지만, 미국은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대부분의 광고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광고 전문 모델들이 등장한다 (AT&T나 Verizon 모델은 광고로 유명해져서 고정으로 등장한다 ^^).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무엇으로 시선을 잡을 수 있는가? 바로 아이디어이다. 정말 재밌는 광고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한국처럼 연예인 개인기에 의존하는 재미가 아니라, 광고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뭐는 얼마, 뭐는 얼마… 하지만 뭐는 priceless… 라고 광고하는 Master Card는 너무나 유명하고, 접착제, 애들 과자 등 각종 광고를 그대로 내보낸 후 마지막에 딱 한마디만 덧붙이는 최근의 Geico (자동차보험회사) 광고, 특유의 촌빨과 영국식 억양으로 광고하는 껌 회사, Orbitz…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렇게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광고에 등장해서 시청자가 좋은 점은, 광고가 자주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저 광고는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워!” 라고 할 틈도 없이 새로운 광고가 속속 등장하고, 그래서 10분마다 광고가 등장하는 미국 TV를 봐도 그리 많이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스타가 등장하든 등장하지 않든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광고는 시청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슈퍼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서 좋은 점은? 훨씬 저렴한 제작비로 광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광고를 찍을 수 있고, 그 신선함이 시청자의 주목을 더 많이 끄는 선순환을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이번 x-file 유출로 연예인들이 많은 정신적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안다. 누가 뭐라해도 그들은 피해자이다. 따라서, 그들이 제일기획을 보이콧 하기로 한 결정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제일기획이 정말 유능한 광고회사라면, 일반인 모델로 광고를 만드는 그 영역을 새롭게 개척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TV에서 광고 보는 재미를 좀 다양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 이기적인 시청자로서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