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 시리즈로 종군위안부들의 현재 삶을 애잔하게
보여줬던 변영주 감독의 극영화 대뷔작, <밀애>를 봤습니다. 남다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의 영화 역시
그녀만의 색깔이 드러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한마디로 참 흡입력이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내용 자체도 흥미로왔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역시 신인(?) 감독답지 않은 관록을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원작이 소설인 이 영화는 두 가정에서 각자의 부인과 남편인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김윤진은 남편의 정부에게 험한 꼴을 당한 끝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이종원 역시 아픈 과거를 갖고 있으며 현재 아내와는 그리 살갑게 지내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 시골 마을에 아랫집, 윗집 사이에 살고 있는 이 둘은 어느날 게임을 시작합니다. 네달동안 애인으로 지내지만 누군가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하면 지게 되는 게임입니다. 인생이 권태로운 두 주인공에게 이러한 놀이는 일종의 해방구이자 쉼터가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람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제목은 비밀스런 사랑, "밀애"입니다. 당연히 영화는 구질구질한 두 사람의 가정사는 그리 많이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통속적이라고 보여질만큼 두 사람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립니다. 너무나 아름답던 러브신들, 솔직한 서로에 대한 갈망들...
결국 관객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누군가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해서 게임이 끝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은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왔다"고...
여기서 문제의 해결 방식은 좀 엉뚱합니다. 김윤진의 남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이지요. 결국 두사람의 능동적인 선택에 의해 이 '밀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떠밀려서 두 사람은 어딘가로 떠나게 됩니다. 결말까지 얘기드리면, 자동차 사고가 나서 이종원은 죽고 김윤진 혼자 열심히 살더라 뭐 이렇게 이상하게 끝이 나버립니다. 끝나기 5분 전까지는 좋았다가 결말을 너무 비겁하게 내버린 격이라고나 할까요?
한가지 가정을 해서, 만약 그들이 능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두 사람은 현재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영혼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육체에 대한 갈망의 성격이 강하지만, 지금 현재 내 옆에서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미래? 당장 몇달 후에 서로에 대해 지긋지긋해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 <봄날은 간다>가 생각났습니다. 한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해 얘기했지요. 나는 이영애가 너무 이기적이었고 즉흥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유지태를 아프게 해놓고 마지막 장면에 "다시 시작할까" 하는 대사에서는 거의 분노가 치밀었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순간의 진실"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때는 유지태를 사랑했고 그래서 함께 있었지만, 그런 한편 유지태는 나이도 어리고 장래도 불투명한 '애'라는 것... 그것에 한계를 느껴 느끼한 남자에게 갔지만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않냐고, 이영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냐고 얘기하더군요.
<밀애>의 김윤진과 이종원은 이 '순간의 진실'에 충실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딸의 사진을 집에 두고 왔다고 목놓아 우는 김윤진이,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네달에 한번씩 여자를 바꿔야 직성이 풀리는 이종원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너무 많이 왔다"고 하면서 이종원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아침에 된장국을 끓여주고 나는 가정에 충실할 수 있을까요? 나는 결국 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될거고, 당신도 마찬가지고... 우린 그렇게 될 게 뻔한데..."
이 영화는 바람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가정이냐 사랑이냐의 전통적인 이분법으로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순간의 진실과 합리적인 판단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 사람을 보여줍니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 당연히 올바른 선택인 것 같지만, '사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합리적 판단'은 얄팍한 계산, 차가운 이성, 그럴듯한 변명의 또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순간의 진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요. 끝이 보이는만큼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 영화가 결말을 이상하게 내는 바람에 이 글도 뭐라고 결말 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 괜히 글이 안써지니까 영화탓을 하는 건가요?
어쨌든, 사랑은 계속 됩니다. 서른이 넘어도, 마흔이 넘어도, 사랑은 계속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비록 그것이 순간의 진실일지라도 말입니다...
한마디로 참 흡입력이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내용 자체도 흥미로왔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역시 신인(?) 감독답지 않은 관록을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원작이 소설인 이 영화는 두 가정에서 각자의 부인과 남편인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김윤진은 남편의 정부에게 험한 꼴을 당한 끝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이종원 역시 아픈 과거를 갖고 있으며 현재 아내와는 그리 살갑게 지내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 시골 마을에 아랫집, 윗집 사이에 살고 있는 이 둘은 어느날 게임을 시작합니다. 네달동안 애인으로 지내지만 누군가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하면 지게 되는 게임입니다. 인생이 권태로운 두 주인공에게 이러한 놀이는 일종의 해방구이자 쉼터가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람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제목은 비밀스런 사랑, "밀애"입니다. 당연히 영화는 구질구질한 두 사람의 가정사는 그리 많이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통속적이라고 보여질만큼 두 사람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립니다. 너무나 아름답던 러브신들, 솔직한 서로에 대한 갈망들...
결국 관객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누군가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해서 게임이 끝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은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왔다"고...
여기서 문제의 해결 방식은 좀 엉뚱합니다. 김윤진의 남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이지요. 결국 두사람의 능동적인 선택에 의해 이 '밀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떠밀려서 두 사람은 어딘가로 떠나게 됩니다. 결말까지 얘기드리면, 자동차 사고가 나서 이종원은 죽고 김윤진 혼자 열심히 살더라 뭐 이렇게 이상하게 끝이 나버립니다. 끝나기 5분 전까지는 좋았다가 결말을 너무 비겁하게 내버린 격이라고나 할까요?
한가지 가정을 해서, 만약 그들이 능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두 사람은 현재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영혼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육체에 대한 갈망의 성격이 강하지만, 지금 현재 내 옆에서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미래? 당장 몇달 후에 서로에 대해 지긋지긋해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 <봄날은 간다>가 생각났습니다. 한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해 얘기했지요. 나는 이영애가 너무 이기적이었고 즉흥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유지태를 아프게 해놓고 마지막 장면에 "다시 시작할까" 하는 대사에서는 거의 분노가 치밀었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순간의 진실"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때는 유지태를 사랑했고 그래서 함께 있었지만, 그런 한편 유지태는 나이도 어리고 장래도 불투명한 '애'라는 것... 그것에 한계를 느껴 느끼한 남자에게 갔지만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않냐고, 이영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냐고 얘기하더군요.
<밀애>의 김윤진과 이종원은 이 '순간의 진실'에 충실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딸의 사진을 집에 두고 왔다고 목놓아 우는 김윤진이,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네달에 한번씩 여자를 바꿔야 직성이 풀리는 이종원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너무 많이 왔다"고 하면서 이종원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아침에 된장국을 끓여주고 나는 가정에 충실할 수 있을까요? 나는 결국 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될거고, 당신도 마찬가지고... 우린 그렇게 될 게 뻔한데..."
이 영화는 바람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가정이냐 사랑이냐의 전통적인 이분법으로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순간의 진실과 합리적인 판단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 사람을 보여줍니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 당연히 올바른 선택인 것 같지만, '사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합리적 판단'은 얄팍한 계산, 차가운 이성, 그럴듯한 변명의 또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순간의 진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요. 끝이 보이는만큼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 영화가 결말을 이상하게 내는 바람에 이 글도 뭐라고 결말 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 괜히 글이 안써지니까 영화탓을 하는 건가요?
어쨌든, 사랑은 계속 됩니다. 서른이 넘어도, 마흔이 넘어도, 사랑은 계속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비록 그것이 순간의 진실일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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