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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영화

서태지 일곱번째 앨범 "Live Wire"

무려 3년이 넘는 공백을 깨고 서태지가 돌아왔다. 4집을 끝으로 은퇴한 이후에는 몇년에 한번씩 감질맛 나게 음반을 내온 그이기에 3년이 넘는 공백이 그리 길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근 시장규모가 1500억 이하로 급감한 음반업계는 서태지의 컴백이 침체된 음반시장을 살려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여타 기획사들의 공적이었던 그가 음반시장을 구해줄 구세주로 등장한 것도 어찌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같은 느낌이 든다. 웬만한 가수들이 100만장을 훌쩍 넘던 90년대의 상황에 비해, 작년같은 경우는 10만장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 그나마 이수영이 30만장을 넘겼기에 MBC는 그녀에게 10대 가수상 대상을 줬다는 얘기 등은 2003년 음반 시장 주위를 떠도는 암울한 얘기들이었다.
서태지 역시 이런 시장 상황을 알기에 100만장을 자신하지 못한다고 한다. 6집의 경우는 거뜬히 100만장을 넘을 수 있었지만 7집은 예약판매만 30만장... 지금같은 불황에서 놀라운 성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의 명성과 경제력이 커진 그의 팬들을 감안할 때 그리 만족스런 숫자는 아닌듯 하다. 하지만 7집 MP3를 유료로 판매하는 한 사이트가 접속폭주로 다운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는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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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었으면 당연히 그의 음반을 샀겠지만 (브로마이드까지 준다는데... ^^;;;) 나중에 돌아가면 사기로 하고, 일단 mp3로 이번 신보를 들어보았다. 6집에 비해 처음 들었을 때의 낯설음은 훨신 덜하였다.
6집에 대한 나의 첫느낌은 진부함과 낯설음의 교차였다. 콘이나 림프비츠킷 등이 몇년 전부터 하던 핌프락, 국내에서는 노바소닉이 이미 개척한 영역인 핌프락을 들고 왔다는 점에서 진부함이 느껴졌고, 그런 한편 그 음악을 서태지가 한다는 점에서 낯설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6집 역시 훌륭한 음반이었다. 그만의 멜로디가 곡마다 녹아있고, 락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을 앨범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7집은 처음부터 아주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하드코어"가 아닌 "감성코어"를 내세운 그의 앨범은 6집에 비해 훨씬 편안하게 다가왔다.
흔히들 서태지의 독창성를 꼽으라고 할 때 그의 뛰어난 "리듬감"이 첫째로 언급된다. 트로트와 발라드가 양분하던 80년대까지의 가요들은 멜로디는 다름대로 다양하지만 몇가지 단조로운 리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서태지는 1집부터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리듬을 들고 나온다. 그것이 "난 알아요"나 "하여가"를 지금 들어도 신선하게 느껴지게 하는 점이다.
서태지는 이번 7집에 그 무엇보다 멜로디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의 강점인 리듬감은 여전히 살아있으면서 멜로디가 풍부해졌다는 건 중간중간에 연주되는 기타 선율만 들어도 느껴졌다. 특히 "live wire"와 "fm business"의 기타 선율이 내 귀를 끌어당겼다. 놀라운 것은 그가 단지 4개의 코드만을 사용해서 곡들을 작곡하려 했다는 점이다. 멜로디를 풍부하게 하려면 코드가 많을수록 좋다. 그럼에도 스스로 4개의 코드에 가두어놓고 그 속에서 최대한의 것을 끄집에 냈다는 점이다. 이건 tip인데, "fm business"의 2분 40초 정도부터 들어보면 4개의 기타코드가 연주된다. 이것이 이번 7집에서 사용한 그 4개의 코드인 것 같다. 내가 절대음감이 없어서 코드 이름까지는 얘기 못할 것 같다. ^^
한편, 시나위에 베이스 주자로 출발했던 그의 이력을 생각할 때 베이스 연주만 열심히 들어도 곡 하나하나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락을 본격적으로 들고나온 3집부터 그의 곡들에 들어있는 베이스 라인은 너무나 훌륭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7집 역시 예외가 아니다.

6집에 비해 한층 발전한 것은 단연 드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집은 작사작곡을 비롯, 모든 연주를 서태지가 했다. 기타와 베이스는 원래 그의 전공이니 별 할 말이 없지만 드럼을 치는 서태지...? 잘 상상이 안 갈 것이다. 그만큼 라이브나 리매스터링된 것 말고 오리지널 6집의 드럼은 초보티를 갓 벗어난 수준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집의 드럼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앨범을 샀다면 누가 연주했는지부터 확인했을 텐데, 이건 분명히 서태지의 솜씨는 아닐 것 같다.
특히 "hefty end"의 드럼 소리를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라. 현란한 드러머의 몸짓이 아마 상상이 갈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건 "로보트"의 드럼 연주는 마치 멜로디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음의 높낮이가 없는 드럼이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분명 환청이지만, 서태지의 장난끼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듣도록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서태지 발라드"라 부르는 게 있다. 1집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2집의 "너에게", 3집의 "널 지우려고 해", 5집의 "Take Five"... 이 계보를 잇는 노래가 "10월 4일"이다. 흔히들 서태지의 음악이 일관성이 없니, 그때그때 유행하는 걸 가져와서 팔아먹는 장르 오퍼상이니 하는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그걸 꼭 나쁘게만 볼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한 장르만 열심히 파고드는 뮤지션이 있는가하면, 여러 장르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뮤지션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서태지는 후자의 모범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장르 속에 자신이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장르를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외피로 이용한다는 것... 가장 좋은 얘가 바로 "서태지 발라드"들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이것이 서태지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어떤 뮤지션에게서도 이러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만하면 그는 장르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존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6집 이후 다시 돌아온 서태지, 나는 마냥 반갑다. 더군다나 이번에도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들을 들고 나왔기에 더더욱 고맙다. 돌이켜보면 서태지를 알게된지 10년이 넘었지만, 난 아직도 그에게만큼 애정을 주고 있는 뮤지션이 없는 것 같다. 80년대의 조용필, 90년대의 서태지에 필적할만한 뮤지션이 2000년대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21세기 음악계를 평정할 The One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