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전직 수석연구원이 60억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특허 덕분에 삼성은 디지털 TV에서 625억의 수익을 더 거두었으니 그 10%를 당사자에게 보상하라는 판결이었습니다. 흐뭇한 소식이었지만, 삼성이 순순히 이 돈을 내놓을 것이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반박 논리를 담은 기사가 나오면서 항소의 뜻을 밝혔다고 하네요.
삼성 측 주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수많은 특허발명 시도가 실패로 끝날 수 있는데, 그 위험부담은 회사가 다 감수한다.2. 수천, 수만 개의 특허 중, 실제 제품에 사용되거나 수익과 연결되는 비율은 극히 낮다.
3. 직무발명을 위해 회사에서 다양한 인적, 물적, 금전적 지원을 한다. 그 기여도가 지나치가 낮게 평가되었다.
1 -> 2 -> 3 순으로 그 논리의 강도가 세다고 판단되기에 쉬운 것부터 차례차례 얘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보도자료에서 삼성은 한해 10조가 넘는 돈을 연구개발비로 쓴다고 자랑처럼 얘기합니다. 이 연구개발비는 그냥 나눠주는 사원 복지비도 아니고 주주배당금도 아닙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세금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비용인 것이지요. 한마디로, 한 해 10조 안에는 위에서 얘기한 "특허발명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위험부담"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구개발의 위험부담을 지지 않은 것과 동의어는 10조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기업의 경쟁력과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아주 본질적인 기업 활동을 마치 엄청난 부담을 지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둘째, 이것 역시 하나마나한 얘기이고 이번 소송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사용되지 않는 수천, 수만개의 특허에 대해서는 격려금 정도로 보상을 할 것이며, 이것에 대해 소송을 낼 연구원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회사의 이익에 크게 기여한 특허 극소수가 있을 것이고, 그 특허를 낸 당사자가 자신의 몫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 이번 소송의 본질인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다툼의 여지가 가장 큰 부분이 세번째 입니다. 발명 당사자에게 보상하도록 명령된 10%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율일 수 있습니다. 발명 당사자는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회사의 장비를 이용해 실험을 할 수 있는 양질의 환경을 제공받았습니다. 더군다나,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는 회사의 제품 생산을 통해 625억만큼의 이윤이 창출될 수 있었음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이 연구원이 1인 회사를 만들어서 그 특허를 다 개발했다해도 625억의 이윤을 올릴 수 있었는가, 이렇게 물었을 때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지요.
동시에, 이 연구원의 특허가 아니었다면 삼성의 디지털 TV는 시장에서 그만큼 경쟁우위에 설 수 없었을 것이고, 프리미엄 대우 역시 받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만큼의 이윤을 창출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10%가 아니라 50% 정도는 받는 게 타당할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법원에서 판단한 절충점이 10%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판결이 아주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이공계 석학들이 충분히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전직 삼성 연구원이 60억 정도의 보상을 받는다는 선례는 수천, 수만의 연구자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해외에 비해 턱없는 연봉과 고용불안 때문에 두뇌유출이 심각한 이공계에서는 국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경영진이 한 명이라도 삼성에 있다면, 이 소송을 기회로 활용했을 것 같습니다. 통크게 판결을 인정하고 60억을 지급한다면, 제2, 제3의 대박을 꿈꾸는 연구원들이 삼성전자로 입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개발해내는 특허와 기술은 삼성을 계속 업그레이드시키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유지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해 연구개발비 10조, 매출액 180조를 달성하는 회사에서, 그 털끝만큼도 안되는 60억을 써서 앞으로 회사를 먹여살릴 인재 10명만 확보할 수 있다면, 60억은 충분히 잘 쓴 비용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이들에게 몇 백억, 몇 천억씩 보상금이 나갈 걸 두려워 한다구요? 그 보상금이 나간다는 전제는, 그 10배인 몇 천억, 멏 조의 초과이윤을 달성한다는, 회사 입장에서 아주 행복한 그런 상황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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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발사 실패, 갤럭시 카메라, 아이튠스11, 박찬호 은퇴 등의 사건이 있었음에도... 그 사이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네요.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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